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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셀린 디온이 위대한 까닭

뚜르(Tours) 2024. 9. 23. 17:41

에펠탑에서 파리올림픽 개막식 피날레를 장식하는 셀린 디온 [셀린 디온 인스타그램 갈무리]

“셀린 디온이 비에 젖은, 오만함의 인질 상태였던 올림픽 퍼레이드를 구하다(Céline Dion rescues Olympic parade after rain-soaked hostage to hubris)” -더 가디언

 

“셀린 디온, 4년의 건강 공백 끝에 올림픽을 눈부시게 하다(Celine Dion dazzles Olympics after four-year health absence)” -BBC

 

파리 올림픽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펜싱, 사격, 수영, 양궁…, 대한민국 선수들이 우리를 낮잡아본 외신들을 머쓱케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토요일 열린 개막식은 화려하고 창의적이지만 여러 논란도 불러일으켰지요. 아나운서가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북한 국호로 부르는 실수도 있었고요. 그러나 에펠탑에서 셀린 디온이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사랑의 찬가’를 열창하면서 개막식이 감동으로 승화했다는 것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셀린은 한 방송국 중계 방송 자막에 나왔듯 1990년대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팝음악의 3대 디바로 꼽힌 여걸이지요?

 

그녀는 2022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강직인간증후군(SPS·Stiff Person Syndrom)’이란 병에 걸려 더 이상 공연을 준비할 수 없다고 밝힙니다. 세상은 충격을 받았고, 온갖 소문이 떠돌아다녔습니다. 온몸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다느니,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느니…, 언니 클라우데트 디온이 언론에서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동생이 최선을 다해 병마와 싸우고 있다고 전해야만 했습니다.

 

SPS는 100만 명 중에 1명 꼴로 발병하는 희소병입니다. 근육이 경직되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왔다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서서히 증세가 악화되는 신경계의 자가면역질환입니다. 1956년 의학계에 처음 보고됐고 처음에는 ‘경직 남성 증후군(Stiff Man Syndrome)’이라 불렸는데 40~50대 여성에게 많이 발병하는 것이 밝혀지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인터넷의 SPS 환자 영상을 보면, 눈뜨고 못 볼 정도로 고통이 끔찍합니다.

 

지금 완치법은 없지만 약물 복용, 정맥주사, 물리치료 등으로 증세를 조절하고 진행을 늦춥니다. 골수이식도 시도되고 있으며 온수치료, 요가, 필라테스, 침술, 지압 등 세상의 모든 치료법이 동원됩니다.

 

셀린은 17년 전 이 병 진단을 받았고 계속 치료를 받다가, 한계에 이른 재작년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2024년 2월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을 시상하러 깜짝 등장했습니다. 3월에는 ‘국제 SPS 인식의 날’을 맞아 인스타그램 계정에 세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언젠가 일상을 회복하고 무대에 돌아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셀린 디온의 투병 모습은 최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아이린 테일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셀린 디온이다(I Am: Celine Dion)’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디온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치료받는 모습은 팬들을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이전의 방식으로 노래하려다가 안 되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셀린은 지난 4월 《보그 프랑스》와 인터뷰에서 “처음엔 스스로에게 ‘왜 하필 나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지? 내가 무엇을 했던 거지? 이게 내 잘못인가?’라고 묻곤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녀는 절대 다른 사람 욕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자책은 계속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수없이 자문하고,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그는 “운동, 물리치료와 함께 새로운 발성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우고 있다”면서 “에펠탑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개막 전에 파리에서 모습이 보여 ‘혹시 개막식에 등장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펠 탑에서 그야말로 온몸을 다해 새 발성법으로 ‘사랑의 찬가’를 부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끔찍한 병이 닥칠 수 있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셀린이 그랬듯, 부정하고 슬퍼하거나 화냅니다. 결국엔 포기하거나 최선의 길을 찾습니다. 그래도 온몸과 영혼을 다 던져 병을 이겨내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셀린이 대단한 것이고, 어느 신문에서 얘기했듯, 이번 올림픽의 또다른 선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셀린처럼, 병마와 싸우고 있는 수많은 ‘선수’들을 위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돌아보면, '훌륭한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랄 것인데….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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