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빛의 화가, 모네

뚜르(Tours) 2007. 8. 29. 10:29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전이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9월 26일까지 3개월 넘게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모네만큼 작품의 이해가 피상적으로 끝난 화가도 드물다. 이번 전시회는 바로 이런 피상적인 이해를 벗어나 모네를 한층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이번 전시회는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의 작품을 주축으로 해서 기타 인상주의 미술관인 오르세 미술관과 개인 소장품 등이 추가되어 다양한 모네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모네에 관한 각종 자료들도 전시되어 놓치기 아깝다.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미술 사조 중 하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던 19세기 말만 해도 사정은 전혀 달랐다. 프랑스 국보급 문화재여서 이번 전시회에 오지 못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 항에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에 대해 한 잡지사 기자는 “인상만 그린 인상주의”라고 혹평을 했고, 이때부터 인상주의라는 말이 태어났다. 그 후에도 인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중들의 몰이해는 계속되었고 심지어 임산부는 출입을 삼가라거나, 침공을 한 터키 군에게 인상주의 그림을 들고 나가 격퇴시켰다는 만평이 나올 정도였다. 인상주의는 흔히 말하듯이, 빛을 그린 회화 사조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믿지는 말아야 한다. 물리적으로도 정확한 말은 아니다. 인간의 눈은 빛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비친 빛이 반사될 때 드러나는 사물들의 형태와 색을 볼 뿐이다. 모네를 두고 빛을 그렸다고 할 때는 사실주의 회화 이전 시대에 어두운 아틀리에에서 관념과 지식만으로 그린 그림과는 달리 직접 밖으로 나가 사생을 했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그래서 인상주의를 외광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연히 변하기 쉬운 야외의 풍경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빠른 터치로 그려야만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색을 섞지 않고 원색을 크고 작은 터치들로 찍어서 사용했다. 데생도 정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완성된 그림에서는 원색의 터치들이 서로 어울려 자아내는 하모니를 통해 야릇한 생기가 감돌았다. 성경이나 신화 혹은 영웅전에 기록된 성자와 영웅들의 삶을 묘사한 이전의 그림들과 얼마나 다른 그림들이었을 것인가. 당시 사람들이 놀라고 야유를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중 수련 연작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연작이라는 작품 제작 방식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는데, 모네는 빛에 민감한 화가여서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햇빛의 양과 빛의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달리 보이는 사물들을 연속해서 그리고 싶어했다. 이 작업은 영화라는 표현 방법이 발명되기 전에 이미 모네가 공간 예술인 회화의 시간성을 파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플러 연작>, <노적가리 연작>, <루앙 성당 연작> 그리고 이번 전시회에 온 <수련 연작> 등 모네는 나이가 들수록 빛의 흐름에 맞추어 함께 변하는 사물의 색채를 마치 연속 촬영을 하듯 그린 것이다. 이 연작들을 나란히 붙여놓고 보면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므로 모네를 빛을 그린 화가라고 부르지 말고 시간을 그린 화가라고 불러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지도 모른다. 파리에는 모네의 작품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마르모탕과 함께 모네 특별 전시실을 갖고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면 모네가 빛이 아니라 시간을 그린 화가임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장장 100m가 넘는 대형 수련화가 두 개의 거대한 타원형 전시실의 벽을 빙 둘러싸고 있다. 관람자는 원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인데, 360도 회전을 하면서 수련 연작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용궁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이 대작은 모네가 숨을 거두기 10년 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파리에서 북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시골마을인 지베르니 정원에서 그린 그림들이다. 프랑스 정부에 기증을 하겠다고 미리 약속을 하고 제작된 이 마지막 대작은 노화가의 유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물 위에 핀 아름다운 수련만 보지만, 인상주의를 깊이 이해한 사람이라면 수련이 아니라 깊고 푸른 연못의 심연을 볼 것이다. 모네는 어쩌면 그 깊고 푸른 어둠을 이겨내기 위해 그토록 아름다운 연꽃을 물 위에 피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모네의 그림은 역설적이게도 빛이 아니라, 시간 그리고 어둠을 그린 것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 역설을 확인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모네가 빛을 그린 화가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빛은 늘 어둠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2천 점이 넘는 그림과 2백 점이 넘는 수련화, 86세에 숨을 거두며 붓을 놓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이 집념을 우리는 단순히 빛을 그리기 위한 집념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모네의 <네덜란드 튤립 꽃밭과 풍차>도 눈여겨봐야 할 그림인데, 풍경화가 일찍 자리를 잡은 네덜란드 화가들이 인상주의의 먼 선구자로 인정을 받고 있고 또 꽃밭의 풍경 자체가 모네 스스로 고백했듯이, “미치도록 아름다워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빛이 아니라 바람을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양분된 화면 중앙에 우뚝 솟아 천천히 돌고 있는 풍차는 붉은 꽃이 뒤덮인 대지와 푸른 하늘을 연결하며 구름을 흐르게 하고 꽃들을 물결치게 하는 바람을 느끼도록 한다. 그림 속에서는 자연 속의 바람이 아닌 다른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 바람은 빛과 어둠과 함께 모네 그림의 또 다른 주제다.상당수의 모네의 그림들이 바람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바람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흔들리는 사물의 불안정한 모습으로만 바람을 그릴 수 있다.
모네는 고정불변한다는 사물의 본질을 믿지 않았다. 사물은 그리고 이 세계는 오직 변화함으로써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감각의 구체성을 믿는 유물론자였고, 변화를 세상의 원리로 파악한 변증법을 신뢰했다. 그의 그림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그가 그린 바람이 100여 년 전에 불던 바람이 아니라 어제 불던 바람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모네, 그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깊고 푸른 용궁으로 갔지만, 그의 그림들은 이제 막 붓을 놓은 것 같은 신선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글_정장진(문학평론가, 고려대 강사) 사진제공_서울 시립미술관(02-2124-8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