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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원'이 박수받는 이유 / 조선일보

뚜르(Tours) 2009. 11. 13. 00:17

'남보원'이 박수받는 이유

 

 

여성이 밥값을 내는 그날까지" 계속하겠다는 한 코미디가 요즘 인기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이름은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 제목 그대로 남성들의 '처참한' 인권을 낱낱이 고발한다. 돈 낼 때만 되면 사라지는 여자친구에게 던지는 말은,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 값은 니가 내라!", 남자의 신체조건을 비웃는 여성들을 향해 외치는 말은 "A컵도 인정한다! 백육십도 인정해라!" 등이다.

 

좀 우스꽝스럽지만, 어찌 보면 이 일은 한국 여성사에서도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 '역차별당한다'는 남성들의 불만이 드디어 방송을 통해 표출되고, 그게 또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여성을 모독한다"는 반응보다는 "그래 요즘 남자들 불쌍하다"며 박수를 친다.

 

군가산점제도와 호주제, 두 제도의 혁명적 폐지로 '일'은 시작됐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차별 없이 키운 딸들의 공직 진출은 눈부시고, 여학생들의 기세에 눌린 남학생이 공학을 기피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내가 남편 월급봉투에 전권을 행사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는 볼멘 얘기도, 고급식당의 점심 장사는 여성들이 다 해준다는 뒷얘기도 있다. 여자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돈 만지는 천한 일은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유교적 전통에서 나오긴 했지만, 경제권은 작지 않은 권력이다. "쥐꼬리만한 월급 갖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건 노동"이라 우기지는 말자.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여성 입장에서는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주로 여성의 정치적 지위, 경제적 참여 등을 근거로 산출한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34개국 중 115위다. 반면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성·제도·개발지수(GID index)의 경우는 세계 4위(2006년)다. 이 지수엔 사회참여는 물론 피임, 외출, 이혼의 자유, 평등한 상속 등 실생활 지수까지 포함됐다.

 

두 지표를 종합하면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안방에서는 장군님이요, 밖에서는 여전히 '찌질이'인 여성들의 나라라는 얘기다.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일상의 권력자인 여성들이 권리확대를 외치는 데 대해 남성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여성들은 '권력 없는 권력'이 무슨 대수냐고 주장한다.

 

이런 부조화를 조정하는 데 여성부와 여성계가 작동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부는 남성들의 미움과 일부 여성계의 채근에 엉거주춤한 모양새다. 그러나 '여성적 리더십'이라는 게 있다면, 이제 여성부와 여성주의자의 지향점은 좀 달라져야 한다. 일단 가장 가까운 문제에서 더 관대해지고, 구조의 문제에 대해 더 엄격해져야 한다.

 

요즘 군대가 옛날 같지 않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좋으면 댁이 가라"는 반응이다. 새로운 방식의 군가산점제 논의가 일고 있지만, 여성부는 "기존 입장과 달라진 바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장애인 등 군면제자와 여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보상해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 이 논의에서만큼은 주도권을 쥘 필요가 있다. 남성들은 '여자들'이 자기들 인생에 '딴지'를 걸어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늘진 곳의 여성의 삶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고, TV에서는 섹스어필이 넘치고 이에 집단적 '성폭력적 언어' 역시 나날이 강도가 세지고 있다. 이런 '사소한' 일도 신경 써야 한다. 이런 문화적 행위는 여성 법관 늘어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여성부가 되지 않으려면, 가까운 문제부터 주도권을 잡아가야 한다. 그것도 못하면 정말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