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그곳에 가고싶다

메밀꽃 필 무렵에 찾은 효석문화제

뚜르(Tours) 2010. 9. 8. 01:01


2010년 9월4일 토요일 오전 10시33분.
하루 전인 9월3일 시작된 제12회 효석문화제가 시작된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화마을을 향해
봉평면 소재지 대로변에서 골목을 들어서면 맨 처음 맞닥뜨리는 곳이
'충주집터'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얽둑배기(곰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옷감류를 파는 포목점)의 허생원이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초보 장꾼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동이'의 따귀를 때린 바로 그 술집인 충주집이 자리했던 곳이라 한다.




오전 10시42분.
축제 진행 요원들이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입구를 지나
이효석의 호인 '가산(可山)'에서 이름을 따 만든
가산공원 앞을 지난다.
이효석의 흉상 부근은 물론 공원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

수년 째 축제 기간중 이곳을 방문해 보지만 유난히
조용하다 못해 썰렁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오늘이다.
아마도 유난히 이른 추석이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조상 묘에 벌초를 떠난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오전 10시56분.
가산공원 바로 옆의 축제 주행사장과
2,7장인지라 장날이 아니라 한산한 봉평장터를 지나
흥정천변에 도착했다.

봉평장터에서 이 흥정천을 건너야
드넓은 메밀꽃밭, 그리고 효석문학관과 효석생가터를 찾을 수 있다.
평소에는 이 흥정천을 건너는 도로와 연결된 왕복 2차선의
콘크리트 교량만이 있는 이곳이지만
매년 축제기간이면 징검다리와 섶다리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인 허생원이 동업자인 조선달,
그리고 초보 장꾼인 젊은 동이와 더불어 밤길을 걸어
이웃 대화장으로 향하던 그 흥정천을 소설속 주인공이되어 건너본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곳
요즘 쉬이 접하기 어려운 섶다리를 건너는 그 기분은 무척 상쾌하다.
해발고도 700m정도인 이곳 흥정천의 물은 너무나 깨끗해 보인다.




오전 11시9분.
흥정천을 건너 멀리 눈 앞의 메밀밭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넓은 벌판을 거니는 사람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메밀꽃밭을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 진다.




오전 11시42분.
활짝 핀 메밀꽃밭에 파묻혀 한참을 거닐며
메밀꽃 향에 취해 본다.
멀리 해발 1,300m가 넘는 보래봉,회령봉 능선 위로는
흰구름이 시시각각 그 모양을 바꿔가며 곧 다가올 가을을 기다리는듯 하다.




메밀을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 ’이라 부르는 이유는 메밀이 가진
5가지 색깔 때문이다.
그 다섯가지 색깔이란 다름 아닌
하얀꽃, 붉은 줄기,, 녹색 잎, 검은 열매,
노란 뿌리의 오색을 말함이다.




새끼 손톱보다 작은 흰 꽃들이 모여서 피는 메밀꽃.
조·피·기장·고구마·감자 등과 함께
대표적 구황작물 [救荒作物]인 메밀.
과거 흉년이나 들어야 사람들이 쳐다보던
천대받던 이 식품들이 이제는 웰빙식품이란
이름하에 귀하게 대접받는다.

구황작물이란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으며 특히 생육기간이 짧아
흉년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되던 식품이다.




희게 핀 메밀꽃을 한참 바라보면 그 흰빛에 현기증을 느낄듯하다.
아마도 소설속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를 물레방아간에 버려두고
달아났던 옛날 생각을 하며 징검다리를 헛디딘 것도
메밀꽃의 흰 빛을 바라보며 현기증을 느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삼복 더위를 능가할 정도의 더위와
따가운 햇살을 온몸에 받으면서도
메밀밭 사이를 누비는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방울방울 흘러 내리는 얼굴의 땀방울보다
더 많은 행복감이 느껴진다.




뜨거운 늦여름 햇살이 내리 쪼이는 곳에서
그늘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군데군데 마련된 초가 지붕의 원두막마다
그늘을 찾아 더위를 식히려는 행렬이 이어진다.




야트막한 야산 아래 평평한 들녂이나 비좁은 산비탈의 메밀밭을 바라보며
문득 수년 전 세간의 화제작이었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메밀밭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웰컴 투 동막골’의 메밀밭은 부드럽고 편안한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전북 고창의 학원농장의 모습이다.
그곳은 아래쪽에서 바라보면 하얀 메밀밭과 푸른 가을하늘이 맞닿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 봉평은 효석의 소설에서 20년 전 성 서방네 처녀와의 인연에 대한 회고의 느낌처럼
착잡하면서 무거운 느낌마저 든다.




메밀의 원산지는 바이칼호(湖) ·중국 북동부·아무르강(江) 일대를 중심으로 한
동부 아시아의 북부 및 중앙 아시아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은 당나라 때 처음 알려졌으며 송나라 때에는 널리 재배되었다 한다.
한국도 원산지와 가까우므로 중국을 거쳐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밀은 일명 비황작물(備荒作物)이라고도 불리우는 구황작물[救荒作物]의 일종이다.
이들 작물은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다.
생육기간이 짧은(70~90일) 조·피·기장·메밀·고구마·감자 등이 이에 속한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께서는 ‘구황벽곡방’을 편찬하여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한 배려에도 힘을 썼다고 한다.
아마 이곳 봉평 마을에 메밀이 자라게 된 것도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는 메밀의 특성 때문이리라.




오전 11시59분.
메밀꽃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효석문학관과 생가터를 둘러보기 위해
흥정천변에 가까이 자리한 메밀밭을 떠난다.
오후에 다시 한 번 둘러보기로 마음 먹는다.




낮 12시10분.
효석문학관으로 향하는 길.
길가 민속음식점 담장 밖에 핀 노란꽃이 유난히 눈에 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피는 야생화인 '마타리'꽃이다.

순우리말인 마타리는 명칭에 대해서 여러설이 있는데
뿌리에서 된장썩는냄새가 난다하여 똥을 뜻하는 고어인 '말'에
줄기가 긴 '다리'같다 하여 '말+다리'가 되었다는설과
말(馬)다리 같이 생겼다 하여 마타리가 되었다는설 등이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에서 된장썩는냄새가 난다고 패장(敗醬)이라 부르며
연한 순을 나물로 이용하고 전초를 소염(消炎) ·어혈(瘀血) 또는
고름 빼는 약으로 사용한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에서 소녀가 양산 받듯 해 보이는 바로 그 꽃이다.




낮 12시13분.
곰보에 왼손잡이인 장돌뱅이 허생원이 평생 유일하게
여복을 듬뿍 받았던 소설 속 '물레방아간'앞을 지난다.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낮 12시26분.
물레방아간을 지나 문학관으로 향하는 길 왼편으로도 드넓은 메밀밭이 펼쳐진다.
메밀에는 필수아미노산과 일반 곡물에는 없는
비타민P(루틴)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껍질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흔히 ‘메밀’ 과 ‘모밀’ 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모밀은 함경도 사투리임을 이 기회에 알고 넘어갔으면 한다.




메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국수이다.
‘메밀국수’ 가운데는 작은 대나무 발 등에 올려 놓은 메밀 사리를
장국(소스)에 찍어 먹는 형태가 있다.
우리의 전통 메밀국수와는 다른 일본식으로, 소위 ‘소바’라 부르는 것이다.
'소바(そば·蕎麥)’는 메밀을 뜻하는 일본말이며
지금은 ‘소바키리(そば切り)’, 즉 메밀국수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낮 12시35분.
문학관으로 향하는 길은 우측 길 위로 메밀밭이 잠시 이어진다.
문득 소설 속의 한 귀절이 떠 오른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효석문학관이 자리한 언덕 아래 넓은 평지에도
온통 소금을 뿌린듯한 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낮12시51분.
효석문학관 구내의 정원 곳곳에도
대형 화분에 씨를 뿌려 둔 메밀이 흰 꽃을 만발한채
방문객들을 반가이 맞아준다.
언덕위에 자리한 때문인지 비교적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아
흰 메밀꽃이 흔들리는 모습이 반가이 손을 흔드는듯 하다.




효석문학관 건물 내부에는 효석과 간련된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는 평소 음악을 무척 가까이했다는 효석의
집필실을 복원해 놓았다.
오래된 유성기와 피아노가 눈길을 끈다.




효석이 직접 쓴 원고지와 만년필 등등
어린 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물건들에 대해
동행한 어른들에게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연신 쏟아 낸다.
그 아이들이 이런 원고지와 케케묵은 만년필을 보았을리가 없으니..




오후 1시41분.
효석문학관을 떠나 효석 생가터를 찾았다.
가까운 주차장에는 대형버스들이 한 두대씩 머물며 수많은 관광객들을
내려 놓는다.




초가지붕 아래 마루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1907년 태어나 1942년 35세를 일기로 단명한 이효석을 생각해 본다.
흔히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그의 대표 소설을 생각하면 그의 생을
자연과 연관되게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 효석의 삶은 극히 도시적이었다.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1934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된 그의 삶은
서양 영화를 즐겨 보았고,
서양에서 온 가수나 무용단의 공연을 보며 넋을 잃기도 했던 도시인의 삶이었다.




오후 1시57분.
효석 생가터를 떠나 다시금 흥정천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실제 효석이 태어난 생가터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700여m 떨어진 곳이라 한다.
다만 그곳이 개인 사유지인지라 부지 확보가 어려워
지금의 저 장소에 집을 짓고 생가터라 지칭할 뿐이다.




오후 2시14분.
효석의 생가터를 지나 문학관을 거쳐 오전에 들렀던 메밀밭으로 가는 길.
주위는 군데군데 메밀밭이 이어진다.

메밀은 찬음식에 속한다. 그래서 위장이 좋지 않은사람들은 주의를 요하는 식품이다.
그러나, 더운기를 보충해 메밀의 찬 성질을 보완해 주는 식품이 무우이다.
그런 이유로 메밀국수를 먹을 때는 무우 김치나 무우즙을 같이 먹는다.




오후 2시25분.
오전에 들렀던 그 메밀밭에 다시 돌아와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메밀 향을 실컷 즐기는 시간을 가진다.
유난히 꿀을 많이 함유한 메밀꽃에는 꿀벌이 쉴새없이 오가며 꿀을 빨아들인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메밀꽃을 3.2초간의 셧터 속도로 잡아본다.
메밀꽃을 일명 ‘교화’(蕎花)라고 부르며,
파도가 일 때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泡沫)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메밀꽃 일다.’라고 하면, ‘물보라가 하얗게 부서지면서 파도가 일다.’
라는 뜻이 된다는 얘기가 이해가 간다.
그만큼 메밀 꽃 하나하나는 너무나 연약한 꽃이다.




오후 2시58분.
오전에 지났던 흥정천의 섶다리와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효석문화제 주행사장과 장터가 있는 가산공원쪽으로 향한다.
주말 오후가 되면서 오전보다는 부쩍 관광객이 많아진듯도 하다.




섶다리를 건너는 젊은 아가씨가 눈에 띈다.
소설 속에서 허생원과 물레방앗간에서 운명적 만남을 가졌던
봉평에서 가장 에뻤다는 성서방네 처녀가 아마도 저정도의
미모를 가졌음직하다.




오후 3시39분.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밭"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12회 효석문화제의 시작은 하루 전인 9월3일이지만
축제 개막식은 토요일인 오늘 오후 6시에 열린다.
개막식을 앞둔 식전행사가 다양하게 벌어지는 주행사장 객석은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 몰려든 인파로 만원이다.




가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의 더운 날씨이지만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연 팀의 열정에 수많은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파란 하늘 저 멀리서부터 먹구름이 두껍게 끼기 시작한다.
아마도 오후 늦은 시간에는 일기예보의 예상처럼
소나기가 한차례 퍼 부을듯하다.
부디 짧은 시간 동안만 내려 축제에 지장이 없기를 바란다.




오후 4시7분.
행사장 뒷편으로 줄지어 마련된 음식점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시원한 메밀국수 한그릇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랜다.
강한 햇빛을 받으며 몇시간을 걸었더니 노출된 팔뚝이 벌겋게 탄 곳은 물론
조금 가렵기까지 하지만 메밀꽃 속에서 보낸 시간이 흐뭇하기만 하다.




오후 4시57분.
축제장을 떠나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멀리 지난 28년 가을 완공된 해발 980m 태기산 정상부의
풍력발전기 20기 중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인체의 바이오리듬 [biorhythm]에 최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해발 700고지인 이곳 봉평을 떠남에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흰 소금을 뿌려 놓은듯한 메밀꽃에 취해 행복한 시간을 보낸 주말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 새벽에는 잔라북도 고창 선운산으로 산행을 떠나야하니
내일의 산행에 대한 기대감도 또 하나의 행복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출처: 김헌수  온누리 님의 블로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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