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편지

뚜르(Tours) 2010. 9. 22. 15:04

두보의 시 ‘춘망(春望)’ 가운데 가족의 편지, 즉 가서(家書)가 만금(萬金)에 해당한다는 구절을 읽다 한참 생각에 잠겼다. 
만금을 줘도 사지 못할 정도로 가족의 편지를 받아보기 어려웠던 상황을 두보는 그리 적었을 것이다. 
당시 두보의 가족은 부주에 있었고, 두보는 장안에 있었다. 
난리통에 가족과 부득불 떨어져 지내야 했던 한스러운 마음을 그렇게 담았다.

원대 말기와 명대 초기를 살았던 문신 원개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가족의 편지를 받은 소회를 다음과 같은 시로 남겼다. 
“저 강물은 삼천 리 / 가족 편지는 열다섯 줄 / 줄마다 다른 말 따로 없고 / 어서 돌아오라는 그 한마디뿐.” 
강물이 삼천 리라고 한 연유는 가족과 내가 떨어져 사는 심정적 거리가 그러하다는 뜻이고, 그렇게 길디 길게 오래 흘러가서 닿는 강물처럼, 나 또한 강물이 되어 필경에는 가족에게 이르고 싶다는 바람을 적은 것이겠다.

고향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가족 편지에 대한 생각에 며칠 묶여 지내고 있다. 
결혼 전에는 주로 어머니로부터 받곤 했는데 돌이켜보니 어머니로부터 마지막 편지를 받은 지도 십수 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자취하던 나에게 햅쌀이나 찬을 보내실 적에 몇 자 적곤 하셨다. 
결혼한 후로는 짧은 편지를 써서 아내나 아이의 머리맡에 두곤 했지만 잦게 한 일은 못 되었다. 
아내와 아이에게 보낸 편지도 언제 적이 마지막이었던가를 생각하니 생각이 나지 않고 다만 까마득하기만 하다.

편지는 서운한 것을 드러내거나 오해를 풀기 위해 오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데 요긴하다. 
대개는 간단한 선물과 함께 짧은 서신을 주고받았다.

최치원은 차를 받고 감사드리는 글을 썼다. 
편지에 쓰기를 
“고요한 선승(禪僧)이나 유유자적한 신선술을 닦는 우객(羽客)에게나 어울릴 것이거늘 뜻밖에도 귀한 선물이 외람되이 평범한 선비에게 미치니, 매림(梅林)을 말하지 않아도 갈증이 풀리고, 원추리가 없더라도 근심을 잊게 됩니다.”
고 써 겸손한 문장으로 고마움을 전달했다. 
매림은 조조가 목이 말라 하는 군사들에게 
“이 산 너머에 매화나무숲이 있다”
고 말하자 군사들이 매실을 생각해 입에 침이 고이고 목마름을 견딜 수 있었다는 옛일을 말함이요,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하는 풀로 불린 탓에 그리 적은 것이었다. 
조선 중기 문인 장유 역시 석류를 선물받고 감사의 시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화려한 석류꽃하며 / 붉게 익은 껍질이 어여쁘다오. / 먼 곳에서 편지를 따라온 진귀한 선물 / 한 알 깨물자 갈증 모두 풀려버렸소”
라고 썼다.

임진왜란의 시기를 살았던 신흠은 유배의 명을 기다리며 노량진 강가에 임시로 몸을 붙이고 살았는데 그처럼 난처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이항복과 편지를 주고받았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그 편지를 40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돌에 글씨를 새겨놓은 듯 뜻이 또렷하고 가슴을 움켜쥐게 하는 감동 또한 있다.

요즘에는 전자메일을 주고받지만 간단히 볼일만을 밝히는 경우가 많다. 
손글씨로 주고받던 편지에 비해 고상하고 우아한 멋도 적다. 
한로가 지나고, 하늘이 더욱 높고 높아져 삼천 리를 가는 듯하니 편지 생각이 절로 난다. 
여태 답신을 미루고 있는 것도 여럿이다. 정성 들여 편지 쓸 일을 생각하는 가을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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