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사랑이 뭐기에

뚜르(Tours) 2010. 9. 17. 01:45

 

 

수많은 사랑의 대사를 만들어 낸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의 배경인 이탈리아의 베로나를 다녀왔다. 
실존 인물은 아니라도 작품에 영감을 주고 모델이 됐을 만한 그 시대의 집이며 발코니며 무덤까지 만들어 놓았다. 로미오가 담장을 타고 오르며 줄리엣의 애간장을 태우던 그 발코니가 생각보다 낮아 애절함이 덜했다. 
저 정도는 나도 기어 올라갔으리라. 
확실히 사랑은 과장되어지나 보다.

종종 남자는 사랑보다 일을 중시하고 여자는 일보다 사랑에 목숨 건다는 말들을 한다.

사랑이 여자에겐 어떤 의미일까.

여성해방론자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사랑이 출산보다도 여성을 더 억압한다. 
남성이 ‘걸작물’을 창조하는 동안 여성은 사랑에 사로잡혀 남성들의 문화를 창조할 에너지와 내용물을 제공했다”고 얘기한다. 
사랑하면 여자만 손해란다.

사랑을 영원한 낭만으로 포장하는 남자와 포장된 그 사랑에 눈이 먼 여자. 
눈이 멀었으니 남자에게 의존하게 되고, 의존하게 되니 살기 위해서라도 생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그 남자를 위해 쓰게 될 것이다. 
그 의존심이야말로 남녀를 불평등한 구조로 만듦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혼 전엔 남자를 잡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해 가며 에너지를 소비하고 결혼 후엔 잡아온 그를 집에 붙들어 놓기 위해 온 힘을 다 소비한다나? 
어떤 사람을 낚느냐 하는 능력에 따라 경제적으로 안정되거나 안 되거나 한다니 이쯤 되면 사랑이 여성에겐 완전한 직업인 셈이다. 
파이어스톤의 말대로라면 여자가 사랑에 목숨 거는 것, 아주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낭만적인 사랑’이란 게 살아가면서 지속 가능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남편 대신 자녀에게 그토록 집착을 보이나 보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얘기 ‘옛날식 다방의 도라지 위스키’만큼이나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많은 젊은 여성들은 요즘 현실에 맞게 진화된 새로운 사랑들을 한단다. 
‘영원히’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이미 잘 아는 그들. 사랑을 할 때도 한 눈은 커다랗게 뜨고 사랑한단다. 
‘지고지순한 사랑’이 남자들의 ‘걸작물’보다 푸대접을 받는 한, 젊은 여성들의 ‘한 눈 뜨고 사랑하기’는 계속될 것이다.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사랑. 
참 든든하다.

쉰 세대들의 대책 없던 사랑. 
“사랑해” 소리만 듣고 평생 밥 안 먹어도 살 것 같았던, 무지해서 더욱 안쓰럽고 애틋했던 Old Fashioned Love Song. 
지나간 사랑은 미화되는 것 맞나 보다.

어느 선배의 말씀. 
“태어나서 할 짓은 다 해 봤지만 젤 해 볼 만한 것은 사랑이더라. 
할 때마다 몸살을 앓고 아파도 가을이 되니까 또 그렇게 아프고 싶구나” 하던데. 
여자를 옭아매고 온 생애를 희생해야만 얻게 되는, 손해만 보는 그 ‘구식 사랑’을 또 하고 싶단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라고 한 김훈님의 말대로 ‘속수무책’이라서 난해한 건가.

엊그제 철이 바뀐 지도 모르고 반팔을 입고 남산 산책 갔다가 추워서 혼났다. 
귀뚜라미는 언제 매미와 멤버 교체를 했는지 열심히 노래하던데 걔들이 나보다 낫다. 
이제 무작정 물가에 주저앉기엔 젖은 바지 감당이 힘들 것만 같다.

 

                     엄을순 / 문화미래 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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