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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뚜르(Tours) 2013. 8. 2. 23:04

 

    오늘의 전례(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규정을 내리신다. 이 규정의 근본정신은 억압된 것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하느님과 진정한 만남을 이루는 데 필요한 성화(聖化)이다(제1독서).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 기가 죽인 요한 세례자가 되살아난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멍에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 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 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저절로 자 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이 해는 희년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해다. 너희는 밭에서 그냥 나는 것만을 먹어야 한다.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너희가 동족에게 무엇 을 팔거나 동족의 손에서 무엇을 살 때, 서로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희년에 서 몇 해가 지났는지 헤아린 다음 너희 동족에게서 사고, 그는 소출을 거둘 햇 수를 헤아린 다음 너희에게 팔아야 한다.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올리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내려야 한다. 그는 소출 을 거둘 횟수를 너희에게 파는 것이다. 너희는 종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25,1.8-17) 복음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 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 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 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 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 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 에 담아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 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 렸다.(마태 14,1-12)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죄가 불러일으키는 힘을 잘 보여 줍니다. 헤로데는 요한 세례자를 죽였습니다. 단순히 요한 한 사람을 죽인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요한을 죽임으로써 자기 안에 있는 정의를 죽였습니다. 순결을 죽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죽였습니다. 죄의 그늘 속에 있던 그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앓는 이를 고쳐 주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며, 굶주린 이를 배부르게 하시는 그분의 사랑의 기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로데는 자신이 죽 였던 요한이 되살아났다며 두려워합니다. 죄지은 자에게는 예수님의 출현이 구 원이 아니라 심판이 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아담이 그랬습니다. 처음에 아담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러한 그 가 죄짓고 난 뒤에는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만 듣고도 '알몸을 드러내기 두려워' 숨어 버렸습니다(창세 3,8-10 참조). 하느님 과의 만남이 기쁨이 아니라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올가미는 사람의 눈을 비뚤게 만듭니다. 그래서 헤로데가 예수님의 출 현을 무서워하고, 아담이 하느님께서 거니시는 소리를 두려워합니다. 사실 예 수님의 출현은 기쁨이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거니시는 소리는 반가움이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하느님에 대한 겸손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하느 님을 뵙기가 두렵지만 그분의 사랑과 용서를 믿으며 용기 있게 자신의 죄를 고 백하는 겸손한 태도만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를 깊이 사랑하시고 한결같이 보살피시니,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두려워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3. 8. 3. Martinus

     

    Ave M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