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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연중 제1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인들은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계약 궤를 진영으로 모셔서 승전을 꾀하지만, 오히려 사력을 다한 적들에게 섬멸되고 계약 궤마저 빼앗긴다. 이때 합당하지 않은 모습으로 사제직을 수행한 엘리의 두 아들도 죽 임을 당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간절히 청하는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다. 그는 예수님의 분부를 어긴 가운데 자신의 치유 이야기를 널리 퍼뜨린 다(복음). 제1독서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이스 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 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 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 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 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 하시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 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작하였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 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 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 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 었다.(1사무 4,1ㄴ-11) 복음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 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 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그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 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 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 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마르 1,40-45)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 엘리의 아들들과 이스라엘군은 계약 궤의 힘으로 적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그 궤를 진영으로 옮겨 옵니다. 언뜻 보기에 이는 주님에 대한 신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기대와 달리 파국으로 이어집 니다. 이스라엘군은 섬멸당하고 계약 궤는 적들에게 빼앗깁니다. 또한 엘리의 두 아들도 죽고 그 집안은 몰락합니다. 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이보다 앞서 서술되는 '엘리의 집안은 망한다.'는 내용의 주님의 말씀(2,27-36)과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2,22-26)에 관한 내용 과 연관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엘리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인들 이 계약 궤에 대해 보인 태도는 참된 신앙이 아니라 가장 거룩한 것을 '수단'으로 여긴 사실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그들 삶의 방식을 주님의 말씀과 계명에 따라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을 그 자체로 경외하는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참된 경건함도 없이,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목적과 계획을 성취하는 영험한 도구로 여기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어쩌면 주님을 모르고 있는 '이방인'보다도 신앙의 참모습 과 더욱 동떨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경우에 이러한 교묘한 불신앙의 유혹과 직면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전체의 삶을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절반의 삶만을 내어놓으며 그것을 믿음이라고 자족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 게 우리의 진짜 관심이 머무는 나머지 절반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하느님의 존재 를 격하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반의 인생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바란다면, 삶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던지는 신앙생활의 용기와 진실함이 필요한 것입니 다.(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하느님, 바르고 진실한 마음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하느님의 마땅한 거처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1. 16.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