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편지 /조한수

뚜르(Tours) 2018. 9. 17. 00:15

 

 

편지 /조한수 
 
눈이 펄펄 내리는 외딴 바닷가
집채만 한 우체통이 
간짓대와 동침하고 있다
추위에 빨개진 불빛이 눈처럼 쌓이고
힘겹게 바다를 건너온 파도가
우체통 아래서 숨을 몰아쉰다
펄펄 내리는 눈들이 어둠에 소화될 때
세파에 속이 텅 빈 소주병이 넘어진다
마지막 남은 소주병이 넘어지면 
집에 가서 나보다 더 아픈 이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눈보다 포근했던 얼굴이 지워지기 전에
밤이 얼어서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소망이 꽁꽁 얼어 떼죽음 당하기 전에
마지막 남은 소주병이 넘어지고
밤이 눈의 무게에 아파할 때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눈꺼풀보다 무거운 낱말이 
편지지 위에 뚝뚝 떨어진다 

 

 

출처 : 시와 음악이 있는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