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부쳐 - 김나영
산도둑 같은 사내와 한번 타오르지도 못하고
손가락이 긴 사내와 한번 뒤섞이지도 못하고
물불가리는 나이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모르는 척 나를 눈감아줬으면 싶던 계절이
맡겨놓은 돈 찾으러 오듯이 꼬박 찾아와
머리에 푸른 물만 잔뜩 들었습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머리만 쓰고 살다가
마음을 놓치고 사랑을 놓치고 나이를 놓이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생은 패(牌)를 잘못 썼습니다.
시집 『수작』(2010, 애지) 중에서
<블로그 '시와 음악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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