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씀바귀 / 박동진

뚜르(Tours) 2024. 4. 22. 22:31

 

 

씀바귀   / 박동진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나주나 정읍쯤에서 열차에 오른 사람들이
막연한 종착역에 대한 두려움과
차멀미에 지쳐 한발 앞서 내렸지만
어디에도 방 한 칸 들일 곳 없어
흙먼지 기름 범벅된 블록담 밑에
한숨과 함께 뱉어낸 누런 가래침 같은, 꽃들이
하필 가닥가닥 레일 교차하는
신도림역 자갈 깔린 선로에 자리 잡고
열차가 지날 때마다 부러질 듯 마구 흔들린다

신 상권 기대되는
신도림 테크노폴리스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 우뚝 키를 높여가는데
씀바귀 무리, 팔다리 부러진 채
무슨 구호를 외치는가
철거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잘근잘근 깨무는 입술에
쓴맛이 배어난다

- 박동진,『유배일기』(도서출판 생각나눔, 2015)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덴의 빗소리 /박동수  (0) 2024.04.25
철길 - 안도현  (0) 2024.04.23
봄비 / 배한봉  (0) 2024.04.20
봄날은 간다 /김용화  (0) 2024.04.19
봄 타나 봐 / 류인순  (0) 2024.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