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봄비 / 배한봉

뚜르(Tours) 2024. 4. 20. 21:07

 

 

봄비  / 배한봉

 

당신은 새 잎사귀의 걸음으로 내게 들어왔다

하늘에서 대지로 조용조용 속삭이며 노크하던

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고

피가 돌아 세계의 상처에 살이 차올랐고

구름의 눈썹 아래로 휴가 떠난 태양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간절했던 것들은 간절하게 자라서

척박한 페이지에 초록빛 문장을 새겨 넣었다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그새 새로 출간된

날개가 내 겨드랑이에서 언뜻 보였다

투명한 잎사귀의 걸음으로 당신이 내게 들어올 때

나뭇가지 안에 갇혀 신음하던 그 춥고 아픈,

간절한 것들이 찍어놓은 푸른 바코드

젖은 말들이 도처에서 재잘대며 걸어 나오고 있다

당신의 아이들이 재잘대며 달려 나오고 있다

- 배한봉,​『주남지의 새들』(천년의시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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