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피카소는 사실과 다르게 그렸는가?

뚜르(Tours) 2024. 5. 5. 21:51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화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예닐곱은 피카소라고 대답할 겁니다. 1973년 오늘(4월 8일)은 그 파블로 피카소가 프랑스 남동부의 영화제 도시로 유명한 칸느 인근 무쟁에서 폐부종과 심근경색으로 숨졌습니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난 지 92년 뒤였습니다.

 

피카소는 지금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될 여성 편력과 여성관 때문에 페미니스트의 공격을 받고 있고, 공산주의에 기울었던 처신 때문에 비난을 받고도 있지요. 그러나 위대한 미술가로 기리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겁니다. 지난해 사망 50주년 때 세계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전시회가 열리며 그를 추모했지요.

 

위 그림은 1907년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이죠? 저도 최근까지 아비뇽을 프랑스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로 알고 있었는데,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아비뇽 거리를 가리킨다네요. 아비뇽의 창녀 5명을 입체적으로 그린 그림의 원래 제목은 ‘아비뇽의 사창가’였는데 작품 탄생 9년 뒤 전시회에서 ‘아비뇽의 처녀들’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현대 미술사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지요. 앞서 폴 세잔이 원근법을 무시하고 사과를 그려 입체파의 포석을 깔았다면, 피카소는 이 그림으로 입체파의 서막을 엽니다. 아프리카 조각품과 가면을 본 뒤 이것을 반영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시각의 그림을 선보인 것이지요.

 

이 그림이 원래 모습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평면적 사진이 진실에 가까울까요? 우리는 사진이 정확히 원래 있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느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부터 철학자들은 원래 모습인 실재(實在)와 우리가 지각하는 현상(現想)은 다르다고 봤는데,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습니다. 똑같은 실재에 대해서 개미나 개가 보는 것과 사람이 보는 것은 다르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지각하니까요. 한 개인도 아침에 보는 것과 저녁에 보는 것이 다를 수 있는데 어느 게 진실일까요?

 

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지요. 어느날 피카소가 기차여행을 가는데, 어느 신사가 피카소를 알아보더니 따졌습니다. “피카소 선생, 왜 요즘 화가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습니까?” 그는 지갑에서 부인의 사진을 꺼내더니 “이렇게 실물 그대로!”라고 강조했습니다. 피카소는 대답했습니다. “부인께서는 작고 납작하시군요.” “······”

 

철학가들은 “우리나라는 철학적 사유가 부재하다”고 한탄합니다. 철학적 사유는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회의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맹목적 신념을 고집하는 것을 ‘철학이 확고하다’고 표현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이 지각하는 것, 사유하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만 깨달아도 많은 갈등이 사라질 텐데···.

 

무지한 사람일수록 자기는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는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배하고, 우르르 거기 몰려다닐까요? 대부분은 미움을 팔아 이익을 보는 정치꾼에 휘둘리는 건데···. 왜 우리는 자기들만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을 지혜롭고 정의롭다고 여기는 경향이 유독 강할까요? 사람들 모두가 각자 잘못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함께 어울리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가능할 텐데, 그러면 정말 큰 ‘대한민국’이 가까워질 텐데···.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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