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 공자의 親親과 묵자의 兼愛와 예수님의 사랑 ◑

뚜르(Tours) 2006. 8. 6. 20:16

     

    ◐ 공자의 親親과 묵자의 兼愛와 예수님의 사랑 ◑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이고,

    묵자(墨子 기원전468~376)는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들보다 후대에 구세주로 오신 분이다.    공자 철학의 최고덕목인 인(仁)과 묵자의 중심사상인 겸애(兼愛)와 예수님의 "사랑"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그 개념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공자는 “仁이라는 것은 사람다움이다. (仁者, 人也)”라고도 하고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仁者, 愛人)”이라고도 했다.    사람의 본질을 仁으로 보고, 仁이 있어 사랑하고 사랑을 해야  사람답다고 했던 것 같다. 공자가 설파한 사랑의 핵심은 친친 (親親)이다. 친친이란 자기와 가까운 이로부터 시작해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까지 베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혈육과 같은 가까운 이를 먼저 사랑하고 더 진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어버이를 먼저 사랑한 뒤에야 다른 사람의 어버이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가까운 이와 먼 이를 구별하여 사랑을 베푸는 데 선후(先後)와 경중(輕重)과 후박(厚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묵자는 사랑을 베푸는 데 차등을 두어 별애(別愛)해서는 안 되고, "사람들이 서로 똑같이 사랑하고(兼相愛) 서로 이롭게 해야 한다(交相利)"고 했다.이를 겸애(兼愛)라 한다. 묵자는 혈연을 중시하던 유가사상과는 달리 사람을 보편적으로 사랑하기를 주장한 박애주의자(博愛主義者)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겠다.묵자는 공자가 말하는 별애(別愛)를 겸애(兼愛)로 바꾸기를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위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가에서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 하여 ‘자기를 미루어 보아 남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에게서 출발하여 남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것에 비해, 묵가에서는 남을 먼저 사랑하면 그 사랑이 도로 자기에게로 온다는 것이다.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은 인류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개체로서의 자아를 그 유기체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즉 사람 속에 자기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람을 사랑하면 자연히 자기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르치는 ‘사랑’은 공자나 묵자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40)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온 정성을 쏟음은 물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라고 가르치신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어린아이들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당부하셨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사랑은 물질적 가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거나 다양한 형태의 가난에도 미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사람뿐만 아니라 증오하고 저주할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하셨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4-46)
    묵자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愛人若愛其身)고 했고, “다른 사람 보기를 자기 보듯이 해야 한다.”(視人之身若視其身)라고 한 점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나 묵자의 보편적 박애주의에도 불구하고 묵자는 결코 일방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강조하지 않았다. 인간 상호간에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라고 설교하고 있다. 즉 인간관계의 본질을 상생(相生)으로 규정하고 ‘겸상애(兼相愛)와 교상리(交相利)를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공자도 묵자도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까지 무조건 사랑하라는 설교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몸소 극한 상황 속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범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런 점들에서 공자도 묵자도 예수님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은 공자의 친친(親親)과 묵자의 겸애(兼愛)를 초월한 무조건적인절대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면서 인간을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하셨다. 공자나 묵자에게서는 예수님이 설교하신 "무조건적으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 과 그 사랑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간다는 구원의 말씀이 없다. 이 점이 바로 예수님과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요약해 보면 공자는 ‘가까운 이를 먼 데 있는 이보다 더 사랑하라’(親親)하고, 묵자는 ‘사랑을 베푸는 데 차등을 두지 말고 두루 사랑하라’(兼愛)하였고, 예수님은 ‘헌신적인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소외(疎外)된 이는 물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유교 문화에 살아서 그런지 공자의 친친(親親)과 별애(別愛)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어느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느낀 점 중의 하나가 잘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 친절한데 비해 모르는 이에게는 불친절하더라는 것이다. 이를 부정할 이는 없을 것 같다. 공자의 친친(親親)과 묵자의 겸애(兼愛)를 넘어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 신자가 될 수 있을 터인데 ......
    세 분의 人間愛에 대한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과연 나의 사랑은 어느 정도인지 한번쯤 가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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