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5730

9월이 오면1 /박동수

9월이 오면1  /박동수끝없이 높고 파란 하늘고추잠자리 날개 짓에코스모스 꽃잎이 하늘거리고영글어가는 풋과일 속엔또 새로운소망의 씨앗이 까맣다구월이 오면, 그날그 때의 꿈들이 코스모스보다더 청결하고 진한우리의 사랑으로 피워지리라꿈을 잃지 않은사랑을 위한 한순간일지라도성숙된 결실을 위하여우화(羽化)의인내로 살아 갈지니

이 한 편의 詩 2024.09.12

저 별빛 / 강연호

저 별빛   / 강연호 ​그리움도 버릇이다 치통처럼 깨어나는 밤욱신거리는 한밤중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필경 지친다 더 이상 감추어둔 패가 없어자리 털고 일어선 노름꾼처럼막막히 오줌을 누면 내 삶도 이렇게 방뇨되어어디론가 흘러갈 만큼만 흐를 것이다흐르다 말라붙을 것이다 덕지덕지 얼룩진세월이라기에 옷섶 채 여미기도 전에너에게 쓰는 편지는 필경 구겨버릴 테지만지금은 삼류 주간지에서도 쓰지 않는 말넘지 못할 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너에게가고 싶다 빨래집게로 꾹꾹 눌러놓은어둠의 둘레 어디쯤 너는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마음은 늘 송사리떼처럼 몰려다니다가문득 일행을 놓치고 하염없이 두리번거리는 것 저 별빛 새벽까지 욱신거릴 것이다​- 강연호,『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문학세계사, 1995)

이 한 편의 詩 2024.09.11

대전역 가락국수 ​/공광규

대전역 가락국수  ​/공광규​​철로가 국수 가닥처럼 뻗어 있다철로에 유리창에 승강장에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가 국숫발을 닮았다​청양에서 대치와 한티고개를 울퉁불퉁 버스로 넘어와김이 풀풀 나는 가락국수를 먹던 생각이 난다부산행 열차를 기다리던 열 몇 살 소년의 정거장소나기를 맞으며 뛰어오던열 몇 살 소녀가 있었던 대전역이다​사십 년 전 기억이모락모락 수증기로 피어오르는 국수그릇​선로도 건물도 오고가는 사람도 많아지고국수그릇과 나무젓가락이 합성수지로 바뀌었지만국수 맛은 옛날처럼 얼큰하다​가락국수가 소나기처럼첫사랑처럼 하나도 늙지 않았다​​ㅡ 시집 『파주에게』(실천문학사, 2017)

이 한 편의 詩 2024.09.08

구월 찬가 /안영준

구월 찬가   /안영준  무더위도 서서히 사라지고그토록 구애를 외치던 매미도짝 찾았나보다 가냘픈 몸으로허공을 이륙한 잠자리는광활한 들판에화려한 춤사위 하며 비행한다 푸르던 잎새는어느새 만삭되어황금 물결 파도치고두렁에 구절초는백의 분장하고 여백을 채운다 유독 길었던 당년 여름은산들바람에 묻혀자취를 감추고만산홍엽 채색된 계절 왔구나

이 한 편의 詩 2024.09.02

9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이채

9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이채꽃피는 봄날엔 할말도 많았겠지요꿈은 땀으로 흐르고땀은 비처럼 내렸어도어느꽃도 만날 수 없는 그런날이 있었겠지요기도하는 꿈빛으로 아침이 찾아와도누워서도 잠들 수 없는 그런밤이 있었겠지요별을 보고도 잠언을 읽지 못하고어리석은 잣대로만 재고 산 가벼움에 대하여고독한 진실과 홀로 견딘 무거움에 대하여무심한 달빛창 바라보며 한숨도 지었겠지요우연히 들었습니다당신의 허전한 기침소리를당신이 가을로 깊어갈 때노을처럼 내리는 그리움이 있다면잉크처럼 번지는 외로움이 있다면길어진 시간의 무게 때문입니까얇아진 낙엽의 부피 때문입니까9월의 당신이여!삶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니이 저녁 노을이저 들녁 낙엽이왜 이렇게 쓸쓸하냐는 말은 조금 늦어도 좋겠습니다우연히 보았습니다타도록 몸을 말리..

이 한 편의 詩 2024.09.01

사랑하는 그대 /김용호

사랑하는 그대  /김용호나에게 위안이 되어준 사랑하는 그대나의 마음은 항상 그대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소중한 의미가 되어 줄 역할을 해주며내 곁에 머물러주신 그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늘 그랬듯이 이해해주고 용서해주고아침저녁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그대 참 고맙습니다.사랑한다는 그 말은 내 가슴에 항상 행복으로 채워집니다.항상 그대도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좋음이 많은 삶이 우리 둘에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우리의 사랑이 서로 깊이 파고 들어가 확장되길 소망합니다.나에게 특별한 사랑하는 그대 영원히 사랑하렵니다.

이 한 편의 詩 2024.08.31

폭염 아래 / 류인채

폭염 아래   / 류인채 ​풀 뽑는 여자들이 언덕에앉아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펑퍼짐한엉덩이들이 이마에 불볕을 이고 잡초를 뽑고 있다뽑혀나간 쇠비름 토끼풀 바랭이가 볕에시들고 있다 손톱에 풀물이 든 여자들이 달아오른호미를 팽개치고 나무 그늘에 들고폭염이 여자들을 놓치고 있다손부채를 부치는 수다들이 목에 두른 수건을 풀어 땀을닦는다 깔깔깔 한바탕웃어젖힌다 된더위가한풀 꺾인다 풀어 놓은 잡담이 순식간에웃음의 무게를들어 올리고 여자들이 애드벌룬처럼 둥둥 떠오른다폭염이 뻘쭘하게그늘 밖에 앉아 있다​- 류인채,『소리의 거처』(도서출판 황금알, 2014)

이 한 편의 詩 2024.08.28

처서 /이재봉

처서   /이재봉모기가 처서비를 피해 숲속으로 달아나다가톱을 든 귀뚜라미를 만났습니다 모기는귀뚜라미에게 왜 톱을 들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귀뚜라미는 긴긴밤 독수공방에서 임을 기다리는처자의 애를 끊으려 톱을 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새벽녘 빗소리에 문득 눈을 뜨니 쓰륵쓰륵어디선가 톱질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들여다보니귀뚜라미 한 마리가 방구석에서 울고 있었습니다우는 소리가 얼마나 애절한지애끊는 톱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 한 편의 詩 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