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5730

배롱나무 붉은 가슴 /박종영

배롱나무 붉은 가슴  /박종영뭉게구름 이는 팔월 아침에배롱나무 붉은 웃음소리 들린다한철 여름이 지나면서 신의 선물로 준 꽃이지금부터 백일을 필 것이라고 귀띔한다.습하고 끈적한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삼복더위를 받아내는 시원한 웃음소리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피는 꽃의 속삭임이 즐겁다.애틋한 사연을 달고 하늘거리며가슴 잇대어 피어나는 웃음은 누구의 본능인가?처서물 지나 선들바람이 불어올 때까지도솔암(兜率庵 ) 비켜가는 구름 한 조각꽃불에 곱게 물들어 흘러갈 것이다.세상살이 어둡고 괴로울 때마다너를 향해 살아감의 경계를 허물려고 해도낮은 숨소리로 채워지는 세월의 눈물꽃이다.혼탁한 세상을 씻어내기 위해한 움큼 배롱나무 붉은 가슴을 훔친다그래도 간지럼 타며 피어나는 꽃,백일(百日)을 꽃등 달고 우쭐대는 배롱나무.

이 한 편의 詩 2024.08.22

네거리에서​​ / 김백겸

네거리에서​​  / 김백겸  신호등에 걸려 행인들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입학과 취직을 그리고 결혼을 기다려야 했다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부치고그 사랑이 스탬프가 찍혀 다시 돌아오는 것도 기다려야만 한다고 오후의 하늘은 말하고 있었다​거리에 붙은 간판처럼, 다르지만 똑같은 얼굴을 하고 서서 행인들은 아직 건너지 못한 길 저편을 바라보았다건너 손에 쥐어야 할 꿈, 진실, 영원에 대한 단서가 길 건너편에 있는 것처럼​기다리는 시간을 비집고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겨울바람과 가로수 잎, 마른 햇살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길 건너편 행인들도 이쪽을 쳐다보았다​이윽고 파란 불이 켜져 행인들은 횡단보도를 건넜다길 하나를 건너서 또 다음 신호등에 걸린 행인들은 도시문화의 기다림에 익숙해져이제는 죽음마저도 기다릴 수 있..

이 한 편의 詩 2024.08.19

여름에 애인이 있다면 / 김이듬

여름에 애인이 있다면  / 김이듬아침 일찍 카페에 가지 않겠어카페 문 열릴 때까지 서성이다가콘센트가 있는 구석 자리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겠어​한여름에 애인이 생긴다면집에 당장 에어컨부터 달겠어나의 밝은 방으로 그를 초대하겠어같이 마트 가서 고등어를 골라도 재미있겠지​하지만 애인을 찾을 수가 없네둘러보면 유쾌하게 떠드는 사람들뿐이야내가 다정해보이지 않는 건 알아만약 내가 식물이라면 내부에 붉은 꽃을 피우는 과야저기 혼자인 이는 온라인게임만 하고 있군말을 붙일 찬스도 없네​“이렇게 나이 먹은 사람이 오실 데가 아니잖아요.”마주 앉은 이가 찡그리며 말했지우연히 부킹한 것 뿐인데친구 부부 따라 춤추러 간 것뿐인데​그날 샴푸나이트클럽 사이키 조명 아래에서그도 내 또래로 보였는데인간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젊게 생각..

이 한 편의 詩 2024.08.18

8월의 기도 /정심 김덕성

8월의 기도  /정심 김덕성  주님! 8월에는고루 비춰 태양열로 익어가는 열매맛있게 영글어 풍요케 하소서 시원한 단비를 내리시어갈급한 영혼에게 감로수가 되어폭염에 시원하게 뿌려 주소서 초록빛 나뭇잎처럼이웃과 같이 씽씽하고 순수하게사랑을 뜨겁게 나누게 하소서 파아란 맑은 하늘처럼모두의 얼굴마다 웃음꽃 피어활기찬 여름이게 하소서 겨레의 꽃 무궁화처럼나라 사랑의 민족혼이 꽃피고가슴마다 꽃이 피게 하소서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사랑과 용서로 화합하여 하나 되는꿈 있는 희망찬 8월이게 하소서

이 한 편의 詩 2024.08.16

바람에 실어 / 박남준

바람에 실어   / 박남준 어찌 지내시는가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하늘의 해, 지는 노을 저편으로 수줍게 얼굴 내어미는 아미 고운 달, 그곳에도 무사한지. 올 장마가 길어 지루할 거라느니 유별나게 무더울 거라느니,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었지 초복인가 했더니 어느덧 말복이 찾아들고 입추라니, 가을의 문턱에 들었다니 아,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 이곳 모악의 밤도 이제 서늘한 입김 피워올리니 따듯한 불기가 간절하구려. 보고 싶구려 내 날마다의 밤 그리움으로 지핀 등 따듯한 온돌의 기운 바람에 실어 보내노니 어디 한번 받아보시려나 서리서리 펼쳐보며 이 몸 생각, 한 점 해 주실런가.

이 한 편의 詩 2024.08.07

한여름 밤 /최우서

한여름 밤   /최우서한줄기 소나기 지나간 여름빗물 스며든 호숫가 뜨락에짙은 운무 어둠을 감싸는 밤입니다뜨거운 커피 한잔 마주하고앉아설렘 한 알 살짝 넣어 입술에 닿으면두근두근 설레는 커피 향이 납니다한 모금 두 모금 마시는한여름 밤한줄기 소나기 쏟아지듯그대 향기가 쏟아지고 말았습니다구름다리 위에 올라호수에 녹아든 불빛 속웃는 그대 바라보는 사이나 그대 마음에 녹아버렸습니다한여름 밤 그대 안에 내가 있습니다

이 한 편의 詩 2024.08.05

8월의 안부 /배정숙

8월의 안부       /배정숙  된더위 사이로꽃비가 간간이 내려와더위를 식히며우리의 아프고 서러운마음을 다독이며 열기식힌다얼마나 힘들면얼마나 서러웠으면그칠 줄 모르고 하늘도 울까밤은 가고 아침이 찾아오면또 한걸음 세상을 향해문을 열면 마음의 문도삐걱거리며 그렇게 열린다.임의 가시는 길임의 하시는 일순조로이 다 잘 되기를두 손 모아 봅니다우주의 기운을 담아임에게 보냅니다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 한 편의 詩 2024.08.01

여름의 하루 /박정재

여름의 하루  /박정재  햇살은 뜨거웠습니다.시원한 바람도 뜨거운 햇살을막지 못했습니다옷깃을 활짝 열어젖히고흐르는 땀을 동무 삼아삶의 신음을 껴안았습니다. 우거진 수림의 손짓을오늘처럼 고마움을 느낀 것은기억 속에 찾기 힘들었습니다그늘의 터널은 천국을 가는 길겯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몸속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기승도만선의 가을 돛단배의 파도에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고 나면떠나간 여름의 즐거웠던 추억이밉지 않은 기억 속에여름의 더위를 생각하겠지요.

이 한 편의 詩 2024.07.27

칠월의 그림자 /이원문

칠월의 그림자    /이원문  넘어선 칠월 문턱덥다 하는 그날이 며칠이 될까구름 들고 비 오는 날 그 며칠 제하면그나마 기울어 끝자락이 될 것이고팔월도 이럭 저럭 열흘 지나 닷새 되면문바람 냉기가 이불 덮어 주겠지 늙음의 시간이라한 달이 하루 같은 늙음의 시간젊음이 그 시간을 얼마나 헤아릴까내일도 많고 모레가 긴 젊은이들이 칠월도 기울면 왔던 철새 떠나겠지아직은 부채질 며칠 남은 칠월일까

이 한 편의 詩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