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5752

여름 다저녁 때의 냇둑 걷기 /고재종

여름 다저녁 때의 냇둑 걷기  /고재종  이윽고 바람결 푸르게 일자냇둑의 패랭이꽃 메꽃 부푼다멀대 같은 쑥대며 개망촛대 흔들린다진종일 백열의 혼몽 속에서 시달린들과 마을과 산과 하늘이여이윽고 바람결 푸르게 일자냇둑의 미루나무 잎새 살랑거린다억세게는 무성한 억새잎 스적인다나 같은 건 마음 뿌리까지 설렌다그때마다 내 넋을 수시로 들고 나는저 흔하고 순수하고 질긴 것들이여어느 순간 냇둑에 우뚝 서서노을 부서져 반짝이는 냇물을 본다냇물의 유유한 흐름을 본다거기 늦게까지 물장구치는 아이들과미루나무 끝에 걸리는 함성을 듣는다나 같은 건 휘파람까지 불어댄다그리움, 그리움, 그리움이여이때쯤 황혼 속으로 새떼는 날아가고때마침 뙈기밭에서 첫물 고추를 딴여인은 냇물에 뜨건 발을 담근다그 옆에서 옴쏙옴쏙 풀을 뜯던흑염소들은 ..

이 한 편의 詩 2024.06.09

고향의 유월 /돌샘 이길옥

고향의 유월   /돌샘 이길옥  고향의 유월은은밀한 연애로 뭉개진보리밭 한쪽 귀퉁이에다까칠한 햇볕을 널면서 시작되었다. 싱싱하고 풋풋한 철부지들의불장난으로 뭉개진 곳이든지 黑心에 중독된외간 남녀의 뜨거운 불길에수난을 당한 곳이든지 고향의 보리밭은해마다 만신창이 되어소문의 비밀을 감춘 채파삭파삭 익어가고 있었다. 보따리를 싸거나야반도주를 공모한유월의 보리밭은고향의 전설이다.

이 한 편의 詩 2024.06.08

장밋빛 스카프 이야기 / 김왕노

​장밋빛 스카프 이야기   / 김왕노​장미의 축제 기간이 오면 누구나 장미에 대해 말해장미 빛깔마다 다른 꽃말에 대해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릴케에 대해 이야기하고그런데 나는 란 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사랑을 할 때마다 백만 송이 장미가 핀다는 그 먼 별나라에 대한이야기도 좋지만 전방에서 함께 군 생활 한 대학교 리드싱어였던경호가 잘 부르던 노래, 그러나 차량 전복 사고로 전방에서 죽은경호 이야기, M16을 기타 삼아 부르던 경호의 ​내가 왜 이럴까. 오지 않는 사람을 부르면경호가 살아 돌아올 것 같아지금은 틈틈이 내가 부르는 노래, 눈물의 노래​- 김왕노,​『백석과 보낸 며칠간』(천년의시작, 2022)

이 한 편의 詩 2024.06.03

6월의 간절한 기도 /권정아

6월의 간절한 기도  /권정아  초록의 성성함같이 마음속에충만한 사랑이 솟아나게 하시고나라 위해 청춘 바친 호국 영령들에게고개 숙여 기도하는 마음되게 하시고남은 가족 잘 있는지 살피게 하소서은빛태양 날마다 비추듯이마음의 빛을 주시어우울한 마음 밝게 하시고지친 마음 일어날 수 있도록 해 주소서한여름 미루나무 시원한 그늘주듯삶의 터전에서 땀 흘리고 일한 뒤안식 찾는 모든이에게 시원한 그늘 지워편안한 휴식으로 몸과 맘 가다듬게 하소서!더위로 지치고 갈증으로 지친이에게맑은물로 시원히 목 추길수 있는끊임없이 솟구치는 옹달샘을 주시어갈증을 시원스레 해소하게 하여 주소서그리하여 유월에는 모든이가하루 하루 삶이 지치지 아니하고날마다 밝고 희망 차게 살아 갈 수 있도록무한한 사랑을 내려 주소서!

이 한 편의 詩 2024.06.01

나의 아버지의 바다 / 백원순

나의 아버지의 바다  / 백원순나는 지금도 아버지의 바다에 대해잘 모른다내가 세 살적엔가아버지는 나를 배에 태우고함께 바다로 가셨다아버지가 그물을 끄시는 동안나는 아버지가 요리하시는 냄비에불을 지피는 것이유년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아버지에 대한 바다는바다에서 돌아오시면친구들과 기울이는 소주잔에출렁이는 알 수 없는 기억을 지나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바다를저 수평선 넘어 세계로 꿈꾸어왔고바다를 언제나 바라보는 소년은장년이 되어서도저녁이면 떠오르는 먼 우주의 바닷가 별빛들이언제나 아버지가 바다에 가면그리워하는 빛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아버지의 바다는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알 수 없는 많은 물고기그 물고기를 팔러잠시 정박하는 항구의 낯선 풍경들아버지의 바다는언제나 알 수 없고다만 아버지가오랜 세월 후돌아오셨..

이 한 편의 詩 2024.05.31

아름다운 순간 / 이동순

아름다운 순간  / 이동순 ​내가 창가에 다가서면나무는 초록의 무성한 팔을 들어짙은 그늘 드리워준다​내가 우거진 그늘 답답해하면나무는 가지 틈새 열어찬란한 금빛 햇살 눈이 부시도록 보여준다​나무는 잠시도 가만있질 않고바람과 일렁일렁 무슨 말 주고받는데 이럴 때잎들은 자기도 좀 보아달라고아기처럼 보채며 손짓하고다람쥐는 가지 사이 통통 뛰고​방금 식사 마친 깃털이 붉은 새들은나무 등걸에 부리 정하게 닦고세상에서 처음 듣는어여쁜 소리를 내고 있다​- 이동순,『아름다운 순간』(문학사상사, 2002)

이 한 편의 詩 2024.05.27

오월을 드립니다 /박희자

오월을 드립니다    /박희자  꽃 떨어진자리에 잎이 돋아나꽃보다더 고운 연초록잎산뜻한 바람과 함께찾아온 오월입니다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노래 부르는 유치원 아이들의똘똘한 음률 사이로연보랏빛 등나무꽃송이송이 하늘에 걸어놓고사랑의 길 만드는 오월입니다 겨우내 터 싸움하던까마귀는끈기 있는 까치에게자리 밀려나고서둘러 둥지 틀어 드나드는까치의 폴폴한 날개깃 속에서곧 식구가 늘어 날 오월입니다 초록나뭇잎은 하늘을 가리고장미 넝쿨은텅 빈 담장에 꽃대를 엮어서여왕의 계절에선물로 준비한 오월입니다 움츠리고 있던어깨를 펴고 담쟁이 넝쿨처럼한걸음에한 개의 초록희망을 심고또 한걸음에한 개의 사랑을 심어더 기운차고더 당당한 가슴으로땅끝에서 하늘까지 닿는오월의 초록향기 가득히 담아사랑하는 내 그대에게 드립니다

이 한 편의 詩 2024.05.26

5월의 향기 /김현주

5월의 향기  /김현주  연둣빛초록빛물감을 타서 뿌려 놓았더니숲은 힘찬 몸짓으로 춤을 춥니다. 온 산야 꽃들의 웃음소리그늘이 넓어지는초록빛 미소가흐르는 신록의 아름다움에아직도 사랑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흐트러지게 하얀 미소 짓는 이팝나무,담장 넘어 뜨거운 사랑으로 고백하는장미,보랏빛 사랑 이야기 엮어놓은 등나무 꽃, 오월처럼만사랑과 존경넉넉한 마음으로풋풋한 향기로 채우고 싶습니다.

이 한 편의 詩 2024.05.25

오월 아씨 /정채균

오월 아씨  /정채균성급한 무더위에 놀란 초목이단비와 살랑바람이 고마워서싱그러운 푸르름으로동산을 물들이고 있어요화려한 나들이 마친 이른 봄은흩어진 꽃잎 따라 돌아가며또 하나의 발자국을 남기고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계절인데마음 한구석 허전함은 그리움일까오롯이 봄볕에 해바라기하며5월을 찬미하는 종다리와더불어 응원하는 좋은 날때가 이르러 저마다 제자리 찾는자연의 모습에 우리 삶도새로운 소망으로가득 채웠으면 좋겠어요.

이 한 편의 詩 2024.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