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다저녁 때의 냇둑 걷기 /고재종 이윽고 바람결 푸르게 일자냇둑의 패랭이꽃 메꽃 부푼다멀대 같은 쑥대며 개망촛대 흔들린다진종일 백열의 혼몽 속에서 시달린들과 마을과 산과 하늘이여이윽고 바람결 푸르게 일자냇둑의 미루나무 잎새 살랑거린다억세게는 무성한 억새잎 스적인다나 같은 건 마음 뿌리까지 설렌다그때마다 내 넋을 수시로 들고 나는저 흔하고 순수하고 질긴 것들이여어느 순간 냇둑에 우뚝 서서노을 부서져 반짝이는 냇물을 본다냇물의 유유한 흐름을 본다거기 늦게까지 물장구치는 아이들과미루나무 끝에 걸리는 함성을 듣는다나 같은 건 휘파람까지 불어댄다그리움, 그리움, 그리움이여이때쯤 황혼 속으로 새떼는 날아가고때마침 뙈기밭에서 첫물 고추를 딴여인은 냇물에 뜨건 발을 담근다그 옆에서 옴쏙옴쏙 풀을 뜯던흑염소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