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그 뒤안길

개판 5분전 대한민국!

뚜르(Tours) 2012. 4. 23. 10:51

 

개판 5분전 대한민국!

고급공무원, 국회의원, 판사, 검사, 3권분립 요인들은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한다고 손들고 서약만

했지 사리사욕과 권력 쟁탈에 눈 멀고 귀 먹어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한심한 나라  

 

학생들은 일진회인가 뭔가 하면서 조폭 흉내내고

대기업들은 영세기업 뜯어 먹으면서 살고 있는 나라

 

사기꾼들은 해외에서 활보하면서 여유만만

말단 공무원부터 판사들까지 대통령 조롱하고

지역의 무식한 잡배들은 검, 경의 앞잡이가 되고

 

수십억대의 체납자들은 내배째라 해도 속수무책이고.

나라를 말아먹는 집단들은 큰 소리 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산화한 사람은 죄인이 되고.

 

국회의원들은 그만둬도 월 130만원씩 받아 처먹고.

깜방 갔다 나온 놈들은 국회의원 하겠다고 기자회견하고.

 

부전자전 대물림하는 국회의원, 연예인들.

법이 있으나 마나 한 나라 우리나라.

평양을 제 마음대로 들락날락해도 처벌 못하는 나라 우리나라.

병역미필자가 예비역, 현역 장성한테 큰 소리치는 나라 우리나라.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는 나라 우리나라.

한글도 제대로 못쓰는 사람이 언론인 행세하는 나라 우리나라.

 

대통령만 되면 부정축재하는 나라 우리나라.

부정축재 환수 못하는 나라 우리나라.

 

국회의원 지방장관 (도시사,시장)등 병역기피자가 득실대는 나라.

 

좌파 정치한  대통령은 동상을 여러 개 만들어 세우고

독립운동과 초대 대통령은 동상 하나 없는 나라.

 

형법에 있는 수뢰죄는 돈을 준 자나 받은 자가 함께 징역형으로

다스리게 돼 있는데 돈 준 놈은 나와 활개치고

돈 받은 자는 형무소에 가두는 재판 아닌 개판 치는 나라.

 

장관은 20일만 해도 죽을 때까지 연금을 타먹는 나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괴상한 나라 대한민국이란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세계에 알려졌던 나라가

부모를 죽이고 노인을 제집 강아지 만치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며 도둑과 사기꾼이 구더기 같이 만연한 나라. 

 

북한에 돈을 퍼다 주어 미사일을 만들어서 불바다 만들겠다고

큰 소리치며 날뛰게 만들어 놓고 노벨상타는 지도자가

최고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들이 판치는 나라.

 

6.25참전 국가수호 희생전사자 위자료 짜장면 사먹으라고

5,000원 주고, 빨지산 희생자 2억원씩 주는 나라.

 

어린이 보호소에 보내는 3~4세 부모에게는 1개월에 40만원

주면서 6.25참전 국가유공자란 80세대들 늙은이는 12만원

주며 생색내는 썩어빠진 국가 대한민국이란 나라.

 

어느 미친 놈이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전쟁하랴!!






전쟁이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했다.

유치원에 다녔어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떠돌며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었다.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땔감일까? 아니면, 한 끼 식사일까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전쟁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속으로 달려 왔고
세계속에 의지의 한국인으로 살아 남았다.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눈물어린 단면이다.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신기한듯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자화상이었다.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행복했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우리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마음씨 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었다.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노인이 문 긴 담뱃대를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의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뱃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었다.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디낼 수 있었을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쟁터
이들에게는 그저 스쳐간 한낮 일장춘몽이었을까?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사라져갔다.

물따라, 바람따라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하나씩.. 둘씩..

모두 다, 잊혀져 갔고,

모두 다, 잊고만 싶었던 세월들..


그러나, 결코..

하나도, 잊을 수도 없고,

하나도, 잊어서는 아니 될

우리들의 아픈 상처이자, 슬픈 자화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