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몽당연필,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감실 옆에서 성체성사에 완전히 봉헌되었던 성인, 성 베드로 올리아노 예마르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승천하신 후에 이 세상에 계시면서 이미
성체성사의 삶을 사셨다.” 성인은 성모님을 “성체성사의 성모님”이라고 즐겨 불렀다.
피에트렝치나의 비오 신부는 그의 영적 자녀들에게 가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는 감실 옆에 항상 계신 성모님이 보이지 않느냐?”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서 계시는 성모님(요한 19, 25 참조) 성모님께서 어떻게 감실 옆에 계시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성 히야친토의 전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다. 한번은 성체성사가
모독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급히 감실로 가서 성체가 든 성합을 꺼내어 더 안전한 장소로 모셔 가려고 했다. 성합을 가슴에 안고 막 제대를 떠나려고 하는데 제대 옆에 있던 성모상으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너는 나를 남겨두고 예수님만 모셔가려고 하느냐?” 성인은 놀라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뜻을 헤아렸지만 성모상을 어떻게 모셔 갈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성모상을 모셔갈 수 있는지 보려고 성모상 가까이 가서 성합을 들지 않은 손으로 성모상을 들어보았다. 놀랍게도 성모상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프랑스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영성체 하는 것과 동굴의 성모님 뵙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당신에게 더 큰 기쁨을 줍니까?” 라는 까다로운 질문을 하는 어떤 이에게 매우 훌륭한 대답을 해 주었다.
“참 이상한 질문이군요. 그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항상 함께 다니시기 때문입니다.”
- 성체성사에서 만나는 예수님 사랑(가톨릭 출판사) p215-216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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