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사람이 도둑을 경계하는 것은 바로 저 자신이 도둑인 까닭이 아닌가

뚜르(Tours) 2012. 12. 29. 10:32

뻐꾸기와 뱀은 뱁새의 둥지를 보면 그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뻐꾸기는 제 알을 낳아 두려고 뱁새 둥지를 엿보고, 뱀은 맛있는 뱁새알이 탐이 나서 그 둥지를 노린다.
뱀은 뱁새가 알을 많이 낳는다는 것을 알고, 뻐꾸기는 뱁새가 알을 잘 품고 까서 새끼를 잘 키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들은 뱁새의 둥지를 노린다.
사람은 뻐꾸기가 뱁새의 성미를 훔치고 뱀은 뱁새의 알을 훔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은 뻐꾸기나 뱀을 도둑으로 몰아 벌을 주질 않는다.
뻐꾸기가 알을 깰 줄 모르는 것은 뻐꾸기의 본성이고, 싱싱한 알을 먹이로 삼는 것은 뱀의 본성인 까닭이다.
자연이 하는 대로 있는 것을 본성이라고 한다.
다만 사람만이 그러한 본성을 무시하고 뻐꾸기와 뱀을 뱁새의 둥지를 탐하는 도둑이라고 말한다.

자연은 무엇이든 감추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든 주고받기 위여 간직할 뿐이다.
사람은 간직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을 못한다.
귀중하다고 싶어지면 무엇이든 감추어 두려고 한다.
시람은 왜 감추려고 하는 것인가?
도둑당할까 보아 겁이 나는 까닭이다.
사람만이 훔칠 줄을 아는 까닭에, 사람이 도둑을 경계하는 것은 바로 저 자신이 도둑인 까닭이 아닌가.
이러한 까닭을 도둑이 제발에 질린다고 말한다.
자연의 편에서 보면 도둑아닌 인간이란 없다.

인간의 지식은 자연을 무슨 보물을 감추어 둔 곳간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은 제 것을 감추어주는 자물쇠 구실과 남의 것을 훔쳐내는 열쇠 구실을 동시에 하므로
인간은 지식을 앞세워 좀도둑이 된다.
지식을 앞세워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한 사람도 있지만 장자는 이 따위 자랑을 좀도둑질로 치부한다.
우주를 하나의 상자라고 생각하자.
인간의 지식은 그 상자를 열어서 별것을 다 훔쳐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 상자를 통채로 훔쳐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지식이다.
작은 도둑은 보석함을 열어서 보석만을 훔치려 들지만 큰 도둑은 보석함을 통채로 들고 가버린다.
도둑은 비싸다는 것만을 골라서 훔친다.
무엇이 비싼 것인가를 지식이 가늠해준다.
귀하다는 물건이나 돈을 훔치면 도둑이고 나라를 훔치면 옛날엔 임금이 되기도 하고 오늘날엔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다.
도둑은 감옥에 가서 콩밥을 먹지만 대권을 잡은 자는 권력을 쥐고 세상을 호령할 수가 있다.

왜 인의(仁義)가 큰 도둑의 열쇠인가?
사람의 본성을 훔쳐가서 갖가지 인의의 덫에 걸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 역시 자연을 따라 있는 법이다.
인의는 그 법을 속이고 온갖 구실을 달아 사람을 옭아맨다.
그러한 구실이 바로 학문을 넓혀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욕심을 자극한다.
사람이 지식을 지니면 짐승과 다르고 초목과도 다르다고 성인들이 설파한 뒤로
사람과 사람이 싸울 줄을 알게 되었다.
전쟁을 누가 일으키고 전쟁터에서 무엇을 하게 하는가?
지식이란 덕망을 쌓았다는 사람들이 앞장 서서 무수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이것이 바로 인위(人爲)의 역사가 지은 죄이며, 이러한 죄를 장자는 큰 도둑이 자연이란 본성을 훔친 결과로 본다.

인의(仁義)가 사람의 본성을 훔치는 열쇠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진다.
본성을 훔쳐간 도둑이 집 밖에 있는 줄만 알고 집 안에 있는 줄을 모르는 까닭이다.
본래 등잔 밑은 어두운 법이 아닌가.
사람의 본성이 갖는 자유를 하늘이 앗아갔는가 아니면 산이나 짐승이 훔쳐갔단 말인가.
아니다.
사람의 본성을 훔쳐다 꼼짝 못하게 밧줄로 묶은 것은 바로 사람의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을 인의가 심고 자연을 앗았다고 장자는 단언한다.

사람은 자연처럼되면 편해진다.
아무 것도 훔칠 것이 없으니 감출 것도 없고 감출 것이 없으니 어찌 불안할 것인가.
사람이 자연이 되면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스스로 따르면서 한 무리의 동무가 된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서로 헤집고 싸잡아 싸울 일이 있을 것인가.
도둑질이 없어지면 집안의 개도 밤잠을 설치지 않는다.
밤마다 넘어 들어오는 도둑이 있다면 온 집안이 불안해한다.
지금 누가 그 도둑을 잡으라고 할 것인가.
모두가 인의(仁義)의 도둑인 까닭이다.


윤재근 지음 <털 끝에 놓인 태산을 어이할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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