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선 밖에서 색칠하기

뚜르(Tours) 2013. 1. 28. 10:00

신년세일이 한창인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뒤에서 한 엄마와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미있었어?"

"응."

"그 작품을 왜 만든 것 같아?"

"아까 엄마가 말했잖아."

"우리한테 말하려는 게 뭐야?"

"아, 몰라!"

초등학교 3~4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는 버럭 짜증을 냈다.
모녀의 대화를 듣는 순간 뒤통수를 딱 때리면서 소름이 쫙 솟았다.
그들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뮤지컬을 보고 내려오는 길인 것 같았다.
엄마는 같이 본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엄마의 질문 속에는 아이를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보였다.
내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내 콧등에 땀이 나는 건 백화점 세일 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건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거야’라고 설명한다고 해도
아이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공연을 보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주인공이 돼 보기도 하고, 등장인물과 친구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자기 나름대로 상상력을 펼치면서 볼 것이다.

예전에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선생께서 H. 라인골드의 ’스마트 몹’이라는 책을 샀는데,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다른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색칠할 때 선 밖으로 나가면 야단을 치는데,
어머니는 내가 선 밖으로 색칠을 해도 웃으면서 받아주셨습니다.
나에게 이런 상상력과 창의력을 주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립니다.’

나도 늘 선 밖으로 색칠하는 아이를 야단쳤다.
아이의 상상력을 선 안에 가둬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선 밖으로 나가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


                             최순식 /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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