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뚜르(Tours) 2013. 8. 21. 21:54

만델라는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다가 오랜 세월을 암울한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만일 보통사람이 투옥되었다면 쉽게 포기하거나 증오, 분노, 복수의 감정을 품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델라는 달랐습니다.
시련의 기간 동안 그는 내면의 가치에 눈을 돌렸습니다.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원한이나 복수의 감정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쓴 자서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길고 고독한 세월을 겪는 동안, 민족의 자유를 향한 나의 갈망은 흑백을 초월한 모든 사람의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변해갔다.
나는 피억압자와 마찬가지로 억압자도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의 자유를 빼앗아간 사람은 증오의 수인이다.
그는 편견과 편협함의 창살 안에 갇혀 있다.
자유를 빼앗겼을 때 내가 자유롭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피억압자와 억압자 모두가 인간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감옥을 나올 때 나의 사명은 억압자와 피억압자 모두를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는 단지 자유로워질 자유와 억압 받지 않을 권리만 얻었을 뿐이다.
우리는 멀고도 험한 여행 길에서 이제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속박을 벗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신장시키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무의미하고 거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없으며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통합은 불가능하고 미래로의 전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델라는 모든 과오를 고해하도록 요청했고
그것이 진실임을 확인하면 사면을 통해 화해를 함으로써 관용의 사회를 열어나갔습니다.
그는 용서의 전제가 기억이며 기억의 바닥에 용서가 깔려있음을 이해한 것입니다.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군인이 전쟁 나갔을 때 휴식을 취하려면 위안부는 필수적이다.(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독일 나치식 개헌 수법을 배우자.(아소 다로 부총리)"
"한국의 국민수준에 의문이 생긴다. 민도民度에 문제가 있다.(시모무라 일본 문부과학상)"
일본 대도시 거리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는 혐한嫌韓시위도 일본 사회의 극단적 우경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일본패전도 벌써 70년이 다 되어갑니다.
동북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일본과의 공조는 긴요합니다.
독일의 경우를 보건데 전범국이라고 해서 항상 나쁜 이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사도 그렇지만 지금의 모습 또한 우려스럽습니다.
원폭 피폭 68주년에 사실상의 항모인 헬기 호위함을 진수하면서 중국침략 당시 기함의 이름을 붙여 중국의 격분을 사고 있습니다.
축구 한일전에서 일어난 일도 그렇습니다.
’욱일승천기’.
욱일승천旭日昇天은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세력이 성대盛大해진다는 뜻입니다.
’욱일승천기’는 끔찍했던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입니다.
일본은 주변국들의 뇌리에 새겨진 침략국 일본의 이미지와 피해의식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진채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전쟁범죄에 대해서 사과와 피해보상을 외면한다면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가들과는 미래를 같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역사인식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일본이 때때로 꺼내드는 논리는, ’과거는 잊고 미래로 나가자’는 주장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 없는 상황에서 말만으로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최근 한일전 축구에서 나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붉은 악마의 플래카드는 이런 이유로 엄중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토머스 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보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고
순진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어버리며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면서 잊지 않는다."

 

/박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