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성지
길상호
시장의 오체투지는 해가 저물고야 끝났다
으슥한 골목, 고무판 아래 접어둔 다리를 꺼내 주무르며
통 속 수입을 헤아리는 그의 낯빛이 어둡다
사람들의 믿음도 이제 유효기간이 지나버렸고
연민을 이끌어낼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만
바닥을 기는 것만이 이제껏 익혀온 생활의 기술,
가로등이 밝혀 놓은 그의 손바닥에는
타르초처럼 붉고 푸른 상처들만이 나부낀다
운명이라는 비탈을 넘어 다니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문을 손금에 묶어둔 것일까
향불 대신 담배를 피워 문 그의 가슴팍에
끌려온 길들이 겹겹 얼룩으로 쌓여 있다
줄장미가 가시밭길을 몸에 새기며 담을 넘어가
피딱지 같은 꽃잎 하나 바닥에 흘려놓는다
이제는 하루 치 고행을 끝낸 두 다리를 위해
남루한 전생을 벗어놓고 가지런히 누울 시간,
통 속에 구겨진 영혼을 주워 담아 일어서는
그의 손에는 아직도 먼 순례의 지도가 남아 있다
계간 《창작과비평》2018년 여름호
출처 : 블로그 ‘변주하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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