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 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시집『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 2005)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가위 보름달 / 草岩 나상국 (0) | 2018.09.25 |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정하 (0) | 2018.09.24 |
가을이라서 /우영국 (0) | 2018.09.22 |
등에 핀 능소화 /정용화 (0) | 2018.09.21 |
손바닥 성지 / 길상호 (0) | 2018.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