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리더가 된다는 것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자기 책상 앞에
“공은 여기서 멈춘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명패를 놓아두었다고 한다.
마지막 결정자.
이것이 바로 최고의 권력자의 자리이며,
이것이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이다.
트루먼은 수십만 명의 몰살을 가져올
원자폭탄 투하를 명령한 대통령이다.
대통령에게 오기 전까지는 정책은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결정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장관들은 왼쪽, 오른쪽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며,
사후에 보아 틀린 의견을 잘못 개진한 장관일지라도
자기가 낸 의견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최종 결정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가냐 부냐, 가느냐 마느냐, 죽이느냐 살리느냐,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일본의 민간인 수십만 명을 죽일 것이다.
그것을 망설여 전쟁을 2.3년 더 끎으로써 연합군 백만명을 죽일 것인가.
그는 둘, 셋, 네 가지 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안이 최선인지는 안개 속에서 사물을 보는 것처럼 분명하지 않다.
나중에 보면 너무나도 명백한 문제이지만 결과를 미리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사이다.
최고 권력자가 아닌 우리 또한 나중에는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사전에는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던 경험을 무수히 갖고 있다.
링컨은 남북전쟁을 감수하더라도 흑인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가 내린 결론은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링컨이 그런 결론을 내리던 당시에는
그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 명료하지 않았다.
만일 남북전쟁이 남군 측의 승전으로 끝나 미국이 둘로 쪼개졌다면
링컨은 나쁜 결정을 내린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에서는 패배한 정치가.
그는 현실을 모르는 공상적인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같은 결론이라도 때와 장소가 다르면 평가가 달라진다.
흑인 해방 자체는 옳다.
그렇다면 왜 링컨보다 앞선 시대에 워싱턴은 노예를 해방하지 않았던가.
이것으로써 워싱턴보다 링컨이 더 이상적인 대통령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상은 흑인과 백인이, 즉 인간이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상만을 추구할 수 없다.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시대는 현실적으로 노예를 해방시키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옳은 이상도 때를 만나야 성취된다.
이상을 너무 서두르다 실패를 저지르면 허황하다는 평판을 받게 된다.
대통령과 임금은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어려움에 매일, 매 순간 부딪힌다.
거기에 더하여 많은 사람들이 최고 권력자를 타락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다.
당태종의 말마따나 최고 권력자의 마음 한 조각만 사로 잡아도
개인의 삶은 ‘인생 역전’을 이루게 된다.
최고 권력자 주변에는 그의 마음 한 조각을 사로잡아 자기의 인생을 역전하고자 하는
수많은 이와 벼룩과 모기가 모여들게 마련이다.
당태종은 황제가 처한 그 같은 어려움을
“천자의 마음은 하나인데 수많은 신하들이 그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고 말하였는데,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 ‘이’와 ‘벼룩’들은 역사를 통하여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증명해 왔다.
최고 권력자는 자기를 이용하려고 몰려드는 자들을 잘 감별하여 올바른 사람을 가까이 하고 그릇된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누가 올바른 사람이고 누가 그릇된 사람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최고 권력자에게 다가오는 자들은 선(善)과 공(公)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얼굴 뒤에 그들은 악(惡)과 사(私)를 감추고 있다.
그들은 최고 권력자의 개인적인 취향과 이익을 파고들어 그의 환심을 사고자 기도한다.
그들은 웃으며 다가온다.
그들은 최고 권력자의 마음에 자기의 이익을 버무린다.
그들의 웃음은 최고 권력자에게는 곧 독이다.
이런 어려운 정황에 대해 링컨도 탄식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되자 나의 입장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나는 이제 적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나를 위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적들 말이다.”
이런 위험한 정황을 버텨내는 한계가 최대 십 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십 년이면 모든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다.
아니, 부패는 한 해가 지나자마자 일어난다.
십 년째 일어나는 것은 부패가 아니라 부패가 극한에 이르러 체제가 붕괴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우리는 세종대왕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세종은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32년간이나 있었다.
부패하여 붕괴하기를 세 번이나 했어야 할 기나긴 기간 동안 세종은 임금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세종은 부패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씩의 판단을 내리면서도 그의 판단은 대부분 옳았다.
(모든 판단이 옳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세종은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국리민복을 증장시키는데 전심전력을 다하며 32년을 보냈다.
누가 세종대왕에게 훈민정음을 만들 것을 강제한 일이라도 있었던가.
정인지(鄭麟趾),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가
훈민정음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주청하거나 간언한 일은 없었다.
그들은 단지 세종의 의지를 뒷 바침 하였을 뿐이다.
도리어 최만리(崔萬理) 등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을 뿐이었다.
링컨의 전쟁 결과 마찬가지로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한글 창제 사업이지만 그 당시의 지식인들이 볼 때 그것은,
워싱턴 시절에 노예를 해방하고자 하는 조급한 이상주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일의 우선 순위를 판단하여
이 시점에서 반드시 훈민정음을 창제해야 한다고 여기고 그 일을 추진하였다.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괴로움 속으로 몰아넣으며 현실을 이상 쪽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높이 나는 자가 멀리 본다.
멀리 보는 자가 옳게 본다.
높이 날고 멀리 보는 자는 희미한 안개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찾아낸다.
길이 올바르기 때문에 자기를 채찍질하며 올바른 길을 갈 힘이 생긴다.
세종대왕은 그런 지도자였다.
김정빈 지음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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