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조(趙)의 무령왕武靈王은, 약해진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주변의 강국들로부터 오는 압력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북방이민족(異民族)의 기마전술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한족(漢族)의 자락이 긴 복장으로는 말 타기가 불편하므로, 그들은 유목민족의 활동적인 호복(胡服)을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변의 이민족을 ‘동이 서융 남만 북적(東夷 西戎 南蠻 北狄)’이라고 해서 멸시해서 부를 만큼 콧대 센 중화민족으로서는 ‘만족(蠻族)’의 옷을 입는다는 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하에 이름을 떨친 사람은 재래의 풍습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은 옛 폐습에 젖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 호복을 채용하려고 하는데, 세인은 내 처사를 비난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원래 성공도 명예도 자신 없이는 얻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국익을 생각하는 사람은 속론(俗論)을 초월하고, 대사업을 이루려는 사람은 범백(凡百)의 의견 따위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주저할 필요가 있습니까’
신하인 비의(肥義)와 의논했을 때, 이렇게 격려를 받은 무령왕은, 호복을 채용할 결심을 굳혔다.
한데, 아니나다를까 강경한 반대의 소리가 일었다.
먼저, 비판의 최선봉에 선 것은 숙부인 공자성(公子成)이다.
그는 이렇게 상주했다.
‘원래 우리 중원(中原)의 나라는, 총명하고 영지(英知)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며, 갖가지 재화가 집중된 곳이다.
또 성인현자들이 가르침을 널리 편 곳이며, 인의(仁義)가 행해지고 있는 곳이다.
또 시(詩)·서(書)·예(禮)·악(樂)이 성행되고 있는 곳이며, 우수한 인재가 육성되고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 벽지에 있는 나라들도 이를 배우려 하고, 이민족(異民族)들도 본보기로 삼아 존경하고 있는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이 중국의 문화를 버리고 먼 오랑캐의 복장을 채용함으로써, 예부터 내려오는 가르침과 도리를 바꾸고, 민심을 거슬리며 식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중원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가려 하고 있다.
아무쪼록 이 점을 재고해 주길 바란다.’
이 말에는 그들 한민족의 의식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무령왕은 몸소 공자성의 집을 방문하여, 끈질기게 설득했다.
‘원래 복장은 용도에 따르는 것이고, 예(禮)는 사회관계를 원활하게 해나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성인들은 땅의 성질을 보고 바람직한 복제(服制)를 정하고, 사회실정에 부응해서 예법을 제정합니다.
그것은 바로,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고, 나라의 풍속을 건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토지의 성질이 달라지면 용도는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지면 예법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나라의 이익이 된다면 한 가지 용도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회관계가 원활하게 될 것 같으면 예법을 바꾸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숙부께서는 풍속습관의 형식에 구애 받고 계신데, 중원의 풍속을 고집하는 나머지, 예전에 맛본 패전의 굴욕을 잊고 계신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무령왕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말에 공자성은 겨우 납득했다.
그러나 중신들의 대부분은 납득하지 못하고, 일제히 반대의견을 상신했다.
‘호복은 아무쪼록 거두어 주십시오. 정해진 법을 지키고 있으면 아무 탈이 없습니다.’
‘그대들은 입을 열기만 하면 선례(先例), 선례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시대의 선례에 따르라고 하는가.
옛날의 성왕(聖王)들도 제각기 풍속을 달리하고 있었으며, 역대의 제왕들도 선제(先帝)의 예법을 반드시 답습한 것은 아니야.
법률·제도도 의복·기구도, 모두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법은 반드시 한 가지만일 수는 없다.
옛날부터의 관습만이 꼭 나라의 실정에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색다른 복장이 사람들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촌스런 습관이 민중을 거칠게 한다고 말한다면, 공자·맹자가 태어난 추(鄒)·노(魯)의 땅에는 비행(非行)이 없고 오(吳)·월(越)이 땅에서는 걸물들이 나오지 않았을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성인들은, 몸을 움직이는 데 편리하도록 복장을 정하고, 사회실정에 맞춰 예법을 정했다.
속담에도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말(馬)을 다루기는 해도, 마술(馬術)의 실제는 모른다.
옛날의 관습으로 현재를 다스리려 해도, 시세(時勢)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정해진 법에 집착하고, 구설(舊說)을 굳게 지키고 있대서야,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현대를 이겨나가는 일 같은 건 도저히 되지도 않아’
이처럼 무령왕은, 끝까지 설득을 계속해서 신하들을 충분히 납득시킨 뒤, 기마전술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조군(趙軍)은 현저하게 전투력을 높이고, 수십 년에 걸쳐 진(秦)나라 조차도 먼저 싸움 걸기를 삼가 할 정도로 그 강력함을 자랑하게 되었다.
<중국고사에서 배우는 제왕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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