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기억, 잊을 건 잊어야 한다

뚜르(Tours) 2012. 3. 11. 00:45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 정도 되는 유태교 경전들을 다 외우는 랍비도 있다.
그 보다 더 유명한 사례는 러시아의 셰레셰프스키라는 사람이다.
칠판 하나 가득히 의미 없는 숫자를 쓴 후 그가 한번 휙 둘러보고 그대로 그것을 외워대는 정도는 기본이었다.
문제는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칠판 위의 숫자를 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확실히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어느 정도로 기억이 탁월하냐면, 왼손으로 얼음을 쥐었던 옛날 일을 기억해내면 실제로 왼손의 체온이 내려간다.
얼음을 쥐었을 때의 그 차가운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신체가 그와 똑같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로 뜨거운 주전자를 만났을 때를 기억해 내면 오른손의 체온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이런 정도의 기억이 축복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셰레셰프스키는 거리에 나가면 온갖 과거의 생생한 기억들이 뒤범벅이 되어 몰려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참여했던 그 모든 실험들의 무의미한 숫자들, 종이 위에 빼곡히 쓰여진 낱말들을 지워버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셰레셰프스키는 나중에는 완전한 무능력자가 되어 서커스단에서 기억력 시범 쇼를 하며 겨우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건강한 기억의 요체는 잘 잊는 것이다.


 

           정호근 교수외 지음 <세상을 보는 눈(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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