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의외로 등장하지 않는 용어가 ’리더십’이다.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가정이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고 똑똑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기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리더라는 타인의 설득으로 원래 선택을 바꾼다면, 이것은 원래 자신의 선택이 잘못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에서 리더십을 정의하는 것은 아주 난해한 문제이다.
이런 경제학에서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드문 경우는
독일 경제학자 스타켈버그(Heinrich Freiherr von Stackelberg)가 1934년에 내놓은 ’스타켈버그 모형’이다.
어떤 산업에 여러 기업이 존재할 때, 한 기업이 가격이나 상품의 품질을 정하면
다른 기업들이 이 기업의 결정을 보고 참고해서 자사 제품 가격과 품질을 결정하는 경우, 처음 결정을 내리는 주도적인 기업을 ’스타켈버그 리더’라고 부른다.
주목할 것은 이 ’스타켈버그 리더’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스타켈버그 리더’는 당장 자신의 이익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설비와 생산량을 선택하기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면서 설비와 생산량을 줄인다. ’스타켈버그 리더’의 행동은 단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은 줄이고 다른 기업들의 이윤을 높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의 선택으로 산업 내에서 과잉 설비 투자나 과잉 생산으로 인한 극단적인 이윤의 감소를 막을 수 있고 이는 타기업뿐 아니라 ’스타켈버그 리더’의 장기적인 이윤도 높인다.
현재 택시의 공급 과잉으로 택시 산업이 아주 어려운데, 택시 산업에도 ’스타켈버그 리더’가 나와서 과감하게 자신의 택시 숫자를 줄인다면 산업 전체가 사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리더 또는 지도자는 이기심을 버리고 영리하지 못한 선택을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이 조직 전체의 이익을 높임으로써 조직 전체는 물론 장기적으로 자신도 이익을 얻게 되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반인들의 언어로 이를 표현하자면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영리함’보다는 ’덕(德)’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여러 사람이 모여 행동할 때, 한 조직의 리더는 조직의 목적을 팽개치고 사익(私益)을 챙길 유혹에 직면한다.
계주가 계 모임의 돈을 갖고 도망하거나 누군가를 열심히 도와서 기관의 장이 되도록 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이 지지자들을 버리는 토사구팽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계원들이 계주를 믿지 못하고, 부하들이 상관을 믿지 못하며, 아내는 남편을 믿지 못한다면 그 조직과 가정은 결코 잘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의 근본에는 상호 믿음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며, 이렇게 믿음이 없어진 것은 계주와 상관과 남편이 이기적이고 똑똑해서 성공한 후에 다른 사람들을 배반할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이기적이지 않고 어수룩한 리더’이다.
삼국지로 보자면 형주 땅을 뺏을 수 있지만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거절하고, 적을 피해서 빨리 도망가야 할 상황에서 자기를 따라나선 주민들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행군 속도를 늦춘 유비(劉備)가 이에 해당한다.
유비에게는 조조(曹操)와 같은 지모는 없었지만 덕이 있었다.
제갈공명, 관우, 장비, 조운 같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땅도 없고 힘도 없는 유비를 따른 것은 유비의 덕(德) 때문이었다.
어수룩한 유비는 성공한 후 부하들을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현대 기업 경영자 가운데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미라이 공업의 야마다 사장이 해당한다.
전자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인 미라이 공업은 직원들을 70세까지 종신 고용하고 성과급제도를 폐지해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없애면서도 매년 큰 이윤을 올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현재 한국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가 인재난이다.
우수 인재는 대기업으로만 쏠린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라이 공업은 70세까지 고용 보장과 성과급 철폐로 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직장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인데도 뛰어난 인재가 몰리고 이들이 매년 많은 아이디어를 내서 신제품을 만들어 많은 이윤 창출이 가능한 것이다.
야마다 사장의 ’느슨하고 어수룩한 경영’이 직원을 쥐어짜는 영악한 경영을 이긴 것이다.
부모의 리더십에도 이런 측면이 있다.
자녀가 공부하다가 틀릴 때마다 이를 발견해 지적하고 고쳐주고 혼내는 아주 똑똑한 부모들이 있는데, 이런 똑똑한 부모들의 자녀들이 과연 잘 될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자녀들은 자신이 잘못할 때마다 이를 귀신같이 발견해서 지적하고 혼내는 부모를 자기 편이라고 느끼기보다는 자신을 혼내기 위한 존재로 보고 더욱 자기 잘못을 숨기고 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빈발하는 청소년들의 비행과 자살 문제에는 요즘 부모들의 이런 헛똑똑이 지도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자녀도 많았고 살기에 바빴던 부모들은 자녀들의 잘못을 일일이 발견하기도 어려웠고
자녀들이 틀려도 고칠 능력도 없었다.
자연히 덕에 의한 어수룩한 리더십으로 자녀를 키운 셈이다. 하지만 오히려 청소년 문제는 그런 어수룩한 부모 밑에서 컸던 옛날에 훨씬 적었다.
지나치게 영리하고 똑똑해지고 있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은 ’어수룩한 덕의 리더십’이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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