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잘못을 두 가지 악행으로 요약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주님을 저버렸고, 자기 자신을 위해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판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이사야서의 예언을 들어 말씀하신다. 곧, 주님을 배척하는 자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여 그들이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올 수 없게 하
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가서 예루살렘이 듣도록 외쳐라. ㅡ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ㅡ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
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이스라엘은 주님께 성별된 그분 수확의 맏물이었다. 그를 삼키는 자들은 누구나
벌을 받아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를 이 기름진 땅으로 데려와 그 열매와 좋은 것을 먹게 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여기 들어와 내 땅을 더럽히고, 나의 상속 재산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
사제들도 '주님께서 어디 계신가?' 하고 묻지 않았다. 율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몰라보고, 목자들도 나에게 반역하였다. 예언자들은 바알에 의지하여 예언하고,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을 따라다녔다.
하늘아, 이를 두고 깜짝 놀라라. 소스라치고 몸서리쳐라. 주님의 말씀이다.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
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 2,1-3.
7-8.12-13)
복음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
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
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 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
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
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
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
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
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
다."(마태 13,10-17)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기를 원
하셨고, 그 신비는 비유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기에 군중에게 비유로만 말씀하셨
다고 전합니다(마태 13,34-35 참조).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왜 군중에게 비유로만 말씀하시는지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
에 예수님께서 주신 답은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그들이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
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고 한 이사야의 예언(이사 6,9-10 참조)
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비유는 하느님 나라
를 '드러내시려고' 감추시는 말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내
가 쟁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데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비
롯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비가 드러나는 것을 보고 들으려면 겨우내 매화꽃
이 피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 꽃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하는 것과 같은 마
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조작해 낼 수도, 이용할 수도, 내키는
대로 재단하여 처분할 수도 없는 살아 있는 실재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으며 하느님 나라를 알아들으려면 이해력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주님에 대한 경외와 감사와 겸손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비유의
말씀은 "성경을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경구처럼 하느
님 나라의 장관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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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7. 24.
Mar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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