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희망을 걸고 사는 이스마엘(Ishmael, Narrator: 리차드 베이스하트 분)과 퀴퀘그(Queequeg: 프레데릭 레더버 분)는 우연히 만나서 포경선인 피코트호를 타게 된다. 그 배의 선장 에이합(Captain Ahab: 그레고리 펙 분)은 모비 딕이라는 흰고래한테 한쪽 다리를 잃고 백경 필살을 맹세하면서 복수의 항해를 선포한다. 인도양에서 만난 엔다비호, 고래잡이 배인 레이철호 등을 만나면서 자신의 결심을 더욱 굳힌다. 심한 파도를 만나자 갑판장 버크(Starbuck: 레오 겐 분)가 심하게 반대하고 마스트의 줄을 끓어버리는 순간 마스트 끝에서 푸른빛이 번쩍인다. 이 우연한 공전현상을 흰고래가 나타난 징조라고 선원들을 안심시킨 에이합 선장은 마침내 모비딕이 나타나자 운명의 결전을 맞이한다.”
광기에 휩싸인 에이합 선장을 연기한 그레고리 펙의 강렬한 연기가 인상적인 (그 강렬한 연기만 인상적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백경’은 (거장이라고 불려도 그릇된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존 휴스턴이 연출하고 부족함 없이 에이합 선장을 연기한 그레고리 펙 덕분에 무게감을 잃고 있지는 않지만, 난파선처럼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며 떠다니진 않지만 거대한 모비 딕의 위용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고래잡이들의 모습처럼 원작의 거대함으로 인해서 조금은 주눅이 든 모습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당연히)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미국문학 더 나아가 세계문학에서도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게 되는 작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걸 보겠다고 원작을 읽어보겠다는 호기를 부릴 생각도 없기 때문에 그저 얼마나 원작에 충실하면서 영화로서의 매력을 찾으려고 했을까? 라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이었다.
너무 거대한 원작의 명성 때문에 부족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영화는 영화대로 실망스럽지 않은 완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흥미롭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원작의 명성에는 따르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나쁜 완성이라고 말하진 않을 것 같다.
바다의 강렬한 매력에 빠져 포경선에 오른 이스마엘
그런 이스마엘과 운명적인 형제애를 느끼는 퀴퀘그
처음에는 어떻게 이스마엘이 바닷가로 향하게 되었는지
퀴퀘그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포경선에 오르게 된 이유와 그 과정들
출항 이후 배에서의 생활 및 뱃사람들에 대한 설명들
이런 단조로운 진행이 이어지며 어떤 식으로 비극이 그리고 모비 딕과의 동반자살과도 같은 혈투가 진행될 것인지 궁금증을 느끼게 될 때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에이합 선장이 등장하고 있고 그 이후부터는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주변부에 밀려나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고 (원작의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 에이합 선장이 작품의 모든 중심 속에 놓여있으며 간간히 스타벅과의 갈등이 다뤄지고 있을 뿐 ‘백경’의 모든 관심은 에이합 선장에게 그리고 에이합 선장의 모든 관심의 대상인 모비 딕에 넋을 놓고 있을 뿐이다.
되도록 단순하게
그리고 되도록 집중해서
여러 가지들 중에서 ‘백경’은 에이합 선장과 모비 딕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에이합 선장의 복수심과 모비 딕에 관한 광기어린 집착이 중심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여러 불길함과 두려움 그리고 격렬한 순간들을 짜임새 있도록 연출해내고 있는데, 기괴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득한 그레고리 펙의 얼굴 표정과 미치광이와 같은 강렬한 눈빛이 허술함이 느껴질 수 있는 진행을 안정감 있게 만들어내고 있고 긴장된 분위기로 가득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식으로 ‘백경’의 중후반부는 모비 딕에 대한 추적이 모든 내용을 채우고 있다.
결국에 가서 벌어지게 되는 모비 딕과의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된다면) 죽음으로 향하게 되는 격돌은 특수효과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면서 에이합의 광기와 모비 딕과의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워낙 원작이 유명한 작품이라 여러 가지로 존 휴스턴 감독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여의치가 않았을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레고리 펙과 같은 좋은 연기자의 멋진 연기가 더해지면서 아쉬움을 찾을 수 없는 작품으로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흥미를 갖고 보게 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좀 졸면서 보기는 했지만.
참고 : 많이 알려져 있듯이 오손 웰즈가 잠시 등장하고 있다. 두둑한 몸짓으로 거창하고 화려하게 설교를 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확신으로 가득해 하는, 스스로가 내뱉는 말에 빠져들어가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레고리 펙의 광기로 가득한 눈빛이 작품을 가득하게 채우고 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