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
임 태 주
가을해가 풀썩 떨어집니다
꽃살 무늬 방문이 해 그림자에 갇힙니다
몇 줄 편지를 쓰다 지우고 여자는
돌아앉아 다시 뜨개질을 합니다
담장 기와 위에 핀 바위솔꽃이
설핏설핏 여자의 눈을 밟고 지나갑니다
뒤란의 머위잎 몇 장을 오래 앉아 뜯습니다
희미한 초생달이 돋습니다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는 손톱 끝에서
詩는 사랑하는 일보다 더 외로운 일이라는데 ……
억새를 흔들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여자는 잔별들 사이로 燈을 꽂습니다
가지런히 빗질을 하고
一生의 거울 속에서 여자는
그림자로 남아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씁니다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지웁니다
- 문학동네 199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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