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수 / 신경림
그의 가난과 추위가 어디 그만의 것이랴.
그는 좁은 어깨와 야윈 가슴으로 나의 고통까지 떠안고
역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간혹 스치는 것은 모멸과 미혹의 눈길뿐.
마침내 그는 대합실에서도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찬 바람이 불고 눈발이 치는 날 그의 영혼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걸어올라가 못 박히는 대신
그의 육신은 멀리 내쫓겨 광야에서 눈사람이 되겠지만.
그 언 상처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도
사람들은 그가 부활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다시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그들을 대신해서 누워 있으리라는 걸.
그들의 아픔, 그들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서.
- 신경림,『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웃음소리 - 이상국 (0) | 2023.12.28 |
---|---|
노년의 12월 /문장우 (0) | 2023.12.27 |
성탄절에 올리는 기도 /이효녕 (0) | 2023.12.25 |
성탄이브의 기도 /보하 이문희 (0) | 2023.12.24 |
12월의 시 - 이해인 (0) | 2023.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