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나의 예수 / 신경림

뚜르(Tours) 2023. 12. 26. 20:39

 

 

나의 예수   / 신경림

 

그의 가난과 추위가 어디 그만의 것이랴.

그는 좁은 어깨와 야윈 가슴으로 나의 고통까지 떠안고

역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간혹 스치는 것은 모멸과 미혹의 눈길뿐.

마침내 그는 대합실에서도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찬 바람이 불고 눈발이 치는 날 그의 영혼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걸어올라가 못 박히는 대신

그의 육신은 멀리 내쫓겨 광야에서 눈사람이 되겠지만.

그 언 상처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도

사람들은 그가 부활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다시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그들을 대신해서 누워 있으리라는 걸.

그들의 아픔, 그들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서.

- 신경림,『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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