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이럴 줄 몰랐던 거다.
의기양양하게 워싱턴으로 날아갔을 때만 해도 방미 성과가
‘광우병 난리’ 속에 풍비박산이 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방미단은 새 정권이 구관(舊官)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데에 들떠 있었고, 백악관과 미국 기업에
유례없이 우호적임을 뽐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거다.
그렇지 않고는 그토록 민감한 사안을 조건 없이 내주고 야심에
찬 표정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거다.
한우 농가의 분노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화염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미친 소, 주저앉는 소, 쓰러진 소, TV 전파를
타고 반복 송출된 혐오스러운 장면들이 무방비 상태로 있던
국민의 비위를 건드렸고, 그것에 광우병이 덧씌워지자 오장육부가
뒤집혔으며, 급기야 수만의 군중이 성난 소처럼 도심으로 몰려
들었다. 모처럼 화려했던 봄날은 수상하게 쓰러지는 소와 그것을
먹고 있는 자신의 역겨운 이미지로 쑥대밭이 되었다.
의욕적인 첫 출정으로 기염을 토했을 청와대와 행정부는 거꾸로
만신창이가 돼야 했다.
어지간히 밝혀졌듯, 광우병 공포의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그런데 그것은 20일간 겪은 난리의 인화물일 뿐 발화점은
아니다. 누가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고 누가 시위를 부추겼는가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발화점은 ‘쇠고기 전면개방’을 국회와 집권당
과의 사전 상의 없이 전격적으로 해치웠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도 행정부의 권한에 속하기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정체성을 버려가며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권이 쇠고기의 월령 제한, 특정 위험물질 부위 규제, 위생과
동물성 사료 여부에 관한 최소한의 검역권을 넘겨주지 않았던 데
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발병률이 억만분의 1이라도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국민정서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번에는 쇠고기 전면개방에 ‘기업 논리’가 승했을 뿐, 국가 논리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의아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부는 6월에 시작될 미국 의회의 FTA 비준 절차에 대비해 장애물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 가져
갈 선물도 필요했을 것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도 미국 소의 안전
성을 보장하고 있기에 전면개방의 위해가 거의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한우 농가의 타격보다 선진입국을 앞당길 미국의 광활한 시장이 눈앞
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십분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약간의 언질만 주고, 6월 본선에서 괜찮은 협상카드로 써먹을
생각은 왜 하지 않았는지, 한국이 캐나다와 함께 ‘쇠고기 완전개방’의
선도 국가로 왜 나서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미국은 한국 사례를 들고 일본과 대만을 종용하고 있다.
이 정권의 주류가 미국 박사들이며, 미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미파
(知美派)다. 미국의 협상 전문가들이 얼마나 냉정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일단 서명된 문구에서 꿈쩍도 않는다는 사실을 터득했을 사람
들이 재협상까지는 아니어도 ‘이의제기’나 ‘보완’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면 촛불집회를 탓할 명분은 좀 궁색하다.
지난 정권은 가진 것 없이 너무 뻗대어 탈이었는데, 이 정권은 ‘미리
알아서 긴다’는 인상을 이렇게 일찍 보여줘야 했는지.
지난 5년간 여론이 ‘자주외교’로 들끓었다면, 향후 5년은 ‘조공외교’에
대한 공방전으로 얼룩질까 두렵다.
정확히 126년 전, 외교에는 완전 초보였던 조선 정부가 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에도 재교섭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외국과의 최초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 12조는 “5년 후 양국이 각국
언어에 익숙해졌을 때, 만국공법의 통례에 따라 공정하게 논의하며
통상조관과 규칙을 재교섭한다”고 명시했다.
조선의 전권대사 신헌은 금위영대장을 지낸 무관이었고, 부관 김홍집은
약관 40세 문관이었다.
조약이 그러한데, 한 단계 낮은 ‘행정협정’에 속할 쇠고기 합의에 최소한
의 유예·경과·규제 조치 등 수입국의 체면을 살릴 작은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국무총리와 장관이 아무리 변명해 봐야 곧이
들을 리 없다. 그렇다고 FTA 비준을 앞둔 마당에 협정관행에 위배되는
촌스러운 요구를 할 수도 없고, 성난 국민들을 상대로 수입 개시를
알리는 입법고시를 강행하기도 난감하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이럴 때야말로 대통령이 나설 순간이다.
‘통 큰 외교’가 국익을 위한 결단이었음을 알리고 신뢰할 만한 대비책
으로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CEO 정치’의
대상이 직원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는 확신을 주는 일이다.
송호근교수 / 서울대 사회학
♬배경음악:The Brothers Four
/St. James Infirm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