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The King Arthur

뚜르(Tours) 2008. 8. 22. 11:10

아더왕의 전설

 

 

 King Arthur

 




VISCHER, Peter the Elder
King Arthur
c. 1513
Bronze
Franciscan Church, Innsbruck

 

 

 

아더왕(King Arthur)

 


AD 약 500년 경의 아더왕은 영국의 전설적인 왕으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전설(원탁의 기사)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아더왕의 충직한 기사들과 부인 기네비어를 위시한 수많은 귀부인들, 그리고 

위대한 마법사 멀린(Merlin)은 아더왕의 전설적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정의롭고 용감하고 자애로우며 지금까지도 영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왕 아더는 남 웨일즈에 거주하고 있던 브리튼 족(켈트 족의 한 일파)의 군주인

 유더 펜드리건의 아들이었는데 (펜드리건은 '왕들의 수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색슨족에게 열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두어 영국을 수호하였다.

 


 

Kappes, Alfred (1850-1894).

 "The Combat of Mordred and King Arthur,"

from Lanier, Sidney.

The Boy's King Arthur.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880.

 

 

 

그후 그 나라는 더 이상 색슨족의 침입을 받지 않았으며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조카 모드레드의 반역으로 542년에

콘월(영국 남서부) 주의 켐런에서 커다란 전투가 벌어졌는데,

모드레드는 살해당했고 아더 역시 커다란 중상을 입어

귀부인들에 의해 애발로니아(아발론) 섬으로 이송되었다고 전해진다.

 



 

THE LEGEND OF KING ARTHUR

 

 



Glastonbury Abbey now sits in ruins -
yet it is the fabled resting place of King Arthur and Guinevere.
 
 
 
아바론 이라는 장소는 아더왕이 모드레드와의 전쟁 후에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떠나간 섬인데
아바론이란 이름은 웨일즈 어로 사과를 뜻하는 아팔과 유사하다고 해서
사과들의 섬이라고도 한다.
 
오늘날까지 아바론은 실제의 섬이 아닌 상징적인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국 웨일즈 서머셋 지방의 글라스톤베리와 동일시 되고있다.
이 이름은 유리 온실 속의 섬이라는 의미인데
죽은 영웅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King Arthur's Round Table
 
 


원탁(圓卓)
 

'원탁'은 아더왕의 이야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원탁은 말 그대로 둥근 탁자로 이 탁자의 어디에 앉던지
앉아있는 사람은 모두가 동등했으며 지위나 계급에서도 평등했다.
 
원탁은 브루토 이야기(designtimesp=14094)에서 처음 등장 하는데 
이후 수많은 전설을 남기고 있으며 위대한 군주 밑에서 확립된
고결한 전우애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원탁의 크기와 좌석의 숫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중세이후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과 성배전설로 맞물려 13개의 좌석으로 묘사가 되고있다.
 

이 원탁은 멀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멀린은 칼라일에서 이 원탁을 만들어 전국의 영주와 기사들을 불러모아

이곳에서 왕에게 충성을 하고 서로간에 도움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한다.

 

이후, 원탁은 카말리드의 왕 라오데간의 손에 들어갔다가

아더왕과 기네비어의 결혼 때아더왕에게 돌려주었다고 전해진다.

 



Speed, Lancelot (1860-1931),

"The Wedding of Arthur and Guinevere"

 from: King Arthur and 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

Ed. Rupert S. Holland. Philadelphia: George W. Jacobs, 1919.

 

 

멀린은 원탁을 만들면서 그리스도의 열세 사도를 기념해 열세개의 좌석을 만들었는데

이중 열 두개의 좌석만이 명망이 높은 기사들의 소유가 되었다.

 

마지막 13번째 자리는 배신자 유다를 상징하는 자리로

그 자리만큼은 언제나 비워두었다고 한다.

한번은 대담한 사라센의 한 기사가 경고를 무시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가

대지가 입을 벌려 그를 삼켜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원탁에는 마법의 힘이 있어 그 자리의 주인이 다가오면 그윽한 향기를 내며

그 자리의 주인이 될 기사 이름이 새겨졌다는 전설도 있다.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용기나 명예 등 여러 가지의 면에서

그 자리의 이전 주인보다 뛰어나야지만이 앉을 수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 윈체스터에는 이를 본 딴 원탁이 하나 있는데

이는 정복자 윌리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The last sleep of Arthur in Avalon
Edward Burne Jones,
1881-91

 



The Death of King Arthur,
Archer, James
1800s
 


Sir Kay Breaketh His Sword at ye Tournament

 

 

 

아더의 탄생과 등극.

 

King Arthur

 

 



King Arthur of Britain

 

 


브리튼의 왕 콘스탄스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인 모이네스와 유더, 그리고 펜드리건이 그들이었다.

콘스탄스가 죽고 모이네스가 왕위에 오르자

신하인 보티전이 반란을 일으키고 모이네스는 살해당한다.

 

이때 성에서 탈출한 펜드리건은 형인 유더를 찾아가 보티전에게 복수 하고 왕위를 되찾는다.

펜드리건이 모이네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지만 색슨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의 형인 유더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유더는 멀린의 조언에 따라 전국의 모든 영주들을 모아

그들의 충성을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 자리에서 유더는 틴터디엘공(公) 골로이스의 아내인 이전느에게 한눈에 반하여

구애를 하지만 이전느는 한마디로 거절한다.

이 사실을 안 골로이스가 아내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가버리자

유더는 골로이스를 반역자로 결정하고 그를 포위한다.

 

이때 유더는 멀린의 도움으로 골로이스로 변신해 이전느와 밀애를 갖고

마침내 골로이스는 전사하여 이전느는 유더의 아들인 아더를 낳게 된다.


아더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액터 경에게 맡겨져 자랐다.

이때 아더의 아버지인 유더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야심가들이 유더의 다음 자리를 노렸지만 모두들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때 브라이스 주교가 자신의 교회 앞에서 검이 박힌 바위를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에는'나는 엑스칼리버라고 일컫는데 왕의 아름다운 보물이다'라고 씌어져 있었다.

 



Arthur A. Dixon (fl. 1893-1920).

"The Youth Pulled it out Easily "

from Doris Ashley's King Arthur and 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

London: Raphael Tuck & Sons Ltd., n.d.[1921].

 

 

 

전국의 수많은 기사들과 야심가들이 이 검을 뽑아보려 애를 썼지만

그 누구도 바위에서 검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아더가 15세 되던 해, 아더는 종자로서 당시 양아버지인 액터 경과

젖 형제인 케이 경과 함께 마상경기에 따라 나서게 되었다.

케이 경은 매우 용감하게 싸웠지만 그만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케이 경은 아더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 새로운 검을 가지고 오게 했다.

아더는 황급히 말을 몰아 집으로 갔지만 유감스럽게도 케이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상심해 발길을 돌리던 아더는 교회 앞 바위에 꽂힌 검을 떠올리고는

그곳으로 달려가 한 손에 쉽게 검을 뽑아낸다.

 




H. J. Ford (1860-1941),

"How Arthur Drew the Sword"

from: King Arthur: The Tales of the Round Table.

Ed. Andrew Lang. New York: Longmans, Green and Co., 1902.

 

 

 

케이 경은 아더가 가져온 검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사람들은 그가 지닌 검이 바위에 박힌 검임을 상기하고 매우 놀라워 한다.

그러나 케이 경이 검을 소유한 것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은 케이 경에게

다시 검을 바위에 꽂은 뒤 빼내어보라고 요구한다.

케이 경은 다시 검을 바위에 꽂은 후, 검을 뽑으려 했지만 검은 뽑히지 않았다.

케이 경은 아더가 그 검을 가져왔음을 실토하고

사람들은 아더에게 검을 뽑아보게 한다.

아더가 검을 잡아들자 검은 쉽게 바위에서 빠져 나왔고,

아더는 신에 의해 선택된 왕으로 여겨지게 되고 곧 왕위에 올랐다.

 

 

 

 

 

http://www.uidaho.edu/student_orgs/

arthurian_legend/gallery/p_img/p.html

 
출처 - 빈밭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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