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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오늘의 묵상(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뚜르(Tours) 2012. 9. 26. 20:53

 

    오늘의 묵상(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빈첸시오 드 폴 성인은 1581년 프랑스의 랑드주 푸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 들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도움으로 공부를 한 그는 사제가 되어 파리에서 본당 사목자로 일했다. 빈첸시오 신부는 한때 여행 도중 해적들에 게 잡혀 노예 생활을 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는 고아와 소외되고 가난 한 이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 자선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 였다. 1660년에 선종한 그를 1737년 클레멘스 12세 교황이 시성하였고, 1885년 레오 13세 교황은 모든 자선 단체와 병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 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의 정신과 활동을 계승하려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1833년 파리에서 설립되어 현재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코헬렛'이란 회중, 학생들, 청중을 '모으는 사람' 이라는 뜻의 히브리 말이 다. 이 코헬렛의 머리말은 인생의 허무와 인간사의 무상함, 세상만사의 덧 없음을 전하고 있다(제1독서). 요한 세례자를 불의하게 살해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몹시 당황한다. 죽었던 요한이 부활하여 놀라운 기적 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또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 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남쪽으로 불다 북 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 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 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아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일도 기 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코헬 1,2-11) 복음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 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 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루카 9,7-9) 오늘의 묵상 요한 세례자와 엘리야는 공통점이 있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권력자 의 비행을 꾸짖었으며, 간악한 여인의 원한을 산 것도 똑같습니다. 헤로데 가 자신의 불의를 고발하는 요한 세례자를 처치하자 군중들 사이에 예수님 을 두고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 하였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했습 니다. 헤로데는 군중들 사이에 퍼진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만나 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정의를 저 버렸을 때 찾아오는 양심의 소리가 불안합니다. 헤로데는 회개하라는 요한 세례자의 진심 어린 충고를 무시하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권력자라 하더라도 죄를 지은 헤로데의 마음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 것은 불안한 마음을 진 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에게 불편한 진리이셨습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예수 님을 만나 보려고 했지만 대면하기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어둠 속에 자신을 숨깁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빛을 싫어하는 이유는 빛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스스로를 자각하는 고통을 피하고자 빛을 파괴하거나 어둠 속으로 들어갑 니다. 그럴수록 양심의 바늘은 자신을 더 아프게 찌릅니다. 죄를 짓고는 못 산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매일미사에서 전재) -----------------------------------------------------------------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가난한 이의 복지와 성직자 양성을 위하여, 복된 빈첸시오 사제에게 사도의 열정을 부어 주셨으니, 저희도 같은 정신으로 그가 사랑한 것을 사랑하고 그가 가르친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2. 9. 27. Martinus

     


    ♬순교자의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