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 류시화 너였구나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슬픔, 너였구나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날이 저물기 전에서둘러 이 겨울 숲을 떠나려고 했었다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다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여기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또 그대로인 것이 있다한때 이곳에 울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지금 어디에 있는가나무들 사이를 오가던 흰 새의 날개 같던그 눈부심은박수 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너였구나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서리 묻은 나뭇가지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너였구나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서둘러 말을 타고 겨울 숲과 작별하려 했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