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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유월아 /황영칠

안타까운 유월아   /황영칠  꽃과 신록으로 찬란하던 오월 앞에미사여구로 붓 놀림에 바쁘던 시인들오월이 떠나고 네가 온 날부터찬사에 침이 마른 붓대도 내려놓고청춘 남녀의 만남도 발길을 돌리더구나 화려한 외모에만 눈이 먼 민심에시들어버린 장미의 시체만 받아 들고눈물로써 호국 영령들의 영혼을 달래며피비린내 나는 민족 상잔의 총 칼을맨 가슴으로 막아낸 안타까운 유월아 슬픈 시인들을 위하여산 자락에 밤꽃도 피워 놓고접시꽃 오솔길도 다정하게 꾸며 놓고담장 위에 올라선 능소화도 피워준너의 눈물겨운 사랑이 애처롭구나 아픔이 얼마나 컸기에38도의 열병도 앓았고서러움이 얼마나 깊었기에참지 못한 눈물을 쏟아 놓고 떠난 유월아눈물 많고 속 깊은 너의 아픔을 유월아나는 알고 있단다잘 가거라 유월아다시 보자 유월아

홍어 장수 문순득 표류기

문순득(1777년~1847년)은조선의 어물 장수였으며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일대에서활동하였습니다.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조선왕조실록에이름 석 자를 남긴 이유는 그가 표류하면서 벌어진파란만장한 여정 때문이었습니다.1801년 12월, 24살의 청년이었던 문순득은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사고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거친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문순득이 탄 배는 망망대해를 2주일이나속절없이 표류하고 낯선 섬에 도착했습니다.류큐 왕국의 '대도(大島)'라는 곳이었는데지금의 일본 오키나와였습니다.다행히 현지인들은 표류자들을 잘 보살펴 주었고그곳에서 문순득은 8개월을 머물면서그 나라 말과 풍습을 배우면서빠르게 적응했습니다.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냈는데그것은 중국으로 가는 류큐 왕국의 조공선에 탑승해서중국..

東西古今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