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전통에서 공감의 치료효과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감을 주요 탐구 대상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사람으로 코헛을 빼놓을 수 없다. 코헛은 정신분석학적 자아심리학에서 공감을 심리치료의 핵심적인 치유기제로 격상시켰다.
코헛은 공감을 두 가지 다른 수준, 즉 추상적인 수준과 임상적인 수준에 따라 정의하였다. 195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코헛은 공감을 ‘대리 내성(vicarious introspection)으로서 상대방의 경험에 근접한 심리적 자료를 수집하는 도구라는 관점을 전개하였다. 정신분석학은 사람의 내적 생활의 복잡한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그 내적 생활에 대한 자료를 관찰하고 수집하는 방법으로서 대리 내성, 즉 상대방을 대신하여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 살피는 활동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리 내성으로서의 공감은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특성이 강하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후에 코헛(1982)은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키고 공감을 다른 사람의 내면생활 안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역량이라고 새롭게 정의하였다.
임상적 차원에서 코헛은 공감이 정신분석의 두 가지 목적, 즉 이해와 설명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청담자가 내부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상담자가 이해할 뿐 아니라 그의 경험이 이해되고 있음을 청담자에게 알리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청담자의 경험이 어떤 정신 역동에 의해서 발생하는지 청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성명을 제공하는 데 공감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감의 필요성에 대하여 코헛이 전개한 논리를 따라가 보자, 사람의 성장과정 중 유아기와 아동기에 부모들로부터 공감적 보살핌을 경험하는 것은 자아 성장에 필수적이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정합성 있는 자아의 발달이 촉진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아 결함이 발생한다. 공감의 실패로 인하여 자아가 결함상태에 있다는 말은 이들의 자아가 유아기, 아동기에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에 고착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자가 공감적 반응을 제공하면 청담자는 어린 시절에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들을 자아대상 전이를 통해 만족시키려고 한다. 자아대상 전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이 부분적으로 만족되어 자아 결함이 수선되고 발달적 성장이 재개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자아대상(selfobject)과 자이대상 전이(selfobject transference_에 대해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자아대상이라는 말은 자아를 떠받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자신의 부분으로 경험한다는 뜻이고, 자아대상 전이는 자아대상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자아를 연장하거나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학대하던 아버지의 역할을 자아대상으로 삼았던 사람이 상담관계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상담자의 역할과 바꿀 때 자아대상 전이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고전적 의미의 전이가 정신적으로 분리된 개체, 즉 상담자를 아버지로 간주하는 것이라면 자아대상 전이는 자아 속에서 상담자의 역할을 아버지의 역할로 간주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이 필요한 자아대상기능을 내면화하고 자아구조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 나가는 성장촉진과정은 ‘변용을 생성하는 내면화’(transmuting internalization)라고 불린다. 코헛은 이 과정인 두 단계를 통해서 일어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자아와 자아대상 사이에 기본적인 공감적 조율과 결속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dll 공감적 결속에 관리 가능한 적절한 실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상담자와 청담자 사이에 자아대상 전이관계가 형성될 정도의 공감적 결속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후자는 이 공감적 결속이 완벽해서는 안 되고 다소 문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코헛은 이 공감적 실패를 ‘최적의 좌절’(optimal frustration)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좌절’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상담자가 상담관계에서 청담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는 그 욕구가 정확히 무엇인지ㅣ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1차적인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사 상담자가 청담자의 욕구 충족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구석엔가 청담자가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은 남기 마련이며 따라서 청담자 입장에서 어느 정도 좌절을 느끼는 것은 불가피하다. ‘최적’이라는 용어는 청담자가 느끼는 좌절이 감당 불능일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청담자가 어렸을 때 느꼈던 것처럼) 그의 역량 내에서 충분히 관리 가능하며 또 이를 통해서 새로운 학습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적절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청담자는 최적의 조절 또는 최적의 실패를 통하여 꾸준히 자신의 반응ㅇ을 훈습해 나가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신구조를 습득하는 성장경험을 맛보게 된다.
코헛은 상담을 진전시키고 또 청담자가 충실한 자아구조를 구축하는데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한데 여기에도 이해와 설명의 공감적 과정이 기능해야 한다고 보았다.
첫째, 새로운 자아대상 전이의 등장에 대항하는 방어기제의 분석, 둘째 다양한 자아대상 전이에 대한 이해와 훈습의 전개, 셋째, 보다 성숙한 수준에서 자아와 자아대상 사이의 공감적 조율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는 달리 말하면 상담과정에서 상담자가 공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상담자는 상담관계 속에서 이 세 가지 단계가 성취될 수 있도록 공감적 반응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공감적 반응을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어렵다. 정신분석학적 치료에서 제공하는 기법이 대개 그렇지만 자아대상 공감 역시 구체적인 사례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상담자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위에 제시한 자아대상 공감에 대한 기본지식을 바탕으로 상담 장면에서 이를 적절히 응용해 나가라는 것이 코헛의 주문인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자아대상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숙한 형태로 탈바꿈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성장한다고 해서 자아 대상에 대한 욕구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평생 지속되는 자아대상 욕구는 평생 지속되는 산소에 대한 욕구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자아대상은 포기해야 할 욕구가 아니라 보다 성숙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유아기, 아동기에 부정적으로 형성된 고태적 자아대상(archaic selfobject)을 발전적으로 해체하면서 성숙한 자아대상(mature selfobject)으로 대치해가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다. 상담관계에서 공감은 바로 이 같은 자아대상의 이동을 촉진하는 핵심수단에 해당한다.
* 공감학 어제와 오늘/박성희저/학지사. p. 16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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