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충의와 신의를 다한다고 해서 죄를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뚜르(Tours) 2009. 1. 7. 11:29

소진은 연나라 왕을 만나 말했다.

“저는 낙양에서 태어난 한낱 서생에 불과합니다.
일찍이 조그마한 공도 없었지만 임금께서는 저를 중용하시어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다행히도 제나라로부터 열 개 성을 되돌려 받게 되어 더욱 두터운 신임을 받을 줄 알았는데,
임금께서는 저를 복직조차 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저를 믿을 수 없다고 중상모략中傷謨略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좋습니다.
임금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지금 여기에 증삼曾參과 같이 효도 잘하는 사람과 백이와 같이 청렴결백한 사람, 그리고 미생尾生과 같이 신실한 사람이 있어, 그 세 사람이 임금을 섬긴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보다 좋을 것이 없지 않소?”

그러자 소진이 단호히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증삼과 같이 효도가 지극한 아들은 단 하루도 부모 곁을 떠나 밖에서 자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를 천 리나 떨어진 먼 이곳에 데리고 와서,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연나라의 국정을 돌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백이는 의리를 지켜 무왕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습니다.
그와 같이 너무 대쪽같이 깨끗한 사람에게 어떻게 음흉한 제나라와의 교섭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미생은 애인과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약속 날짜에 다리에 나가 기다렸습니다.
때마침 엄청난 홍수가 나 물이 계속 불어났지만, 그는 꼼짝도 않고 계속 기다리다가
마침내 다리를 부둥켜 안고 죽었습니다.(尾生之信미생지신)
임금께서는 이렇게 성실하기만 한 사람을 천리 밖에 내보내
제나라의 사나운 병사들을 물리치게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제 나름대로의 충의와 신의를 지켰기 때문에 오히려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이에 연나라 왕이 반문하였다.

“아니, 충의와 신의를 지켰다면 어찌 죄를 받을 수 있겠소?
그대가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죄를 받은 것 아니오?”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먼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집을 떠나 있을 때 그의 처가 몰래 다른 남자와 통정했습니다.
이윽고 그가 돌아오자 정부情夫가 매우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아무 걱정 말아요. 이미 술에 독을 타 놓았어요’하고 말했답니다.
드디어 남편이 돌아오자 부인은, 하녀에게 약주잔을 들려 남편에게 권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독을 탄 사실을 알고 있었던 하녀는 매우 괴로웠지요.
주인에게 사실을 말하자니 당장 부인이 쫓겨날 것이고,
그렇다고 알리지 않으면 주인이 죽기 때문이었지요.
생각다 못한 하녀는 일부러 넘어져 술잔에 든 약주를 바닥에 쏟아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은 크게 화를 내며 채찍을 들어 50차례나 때렸습니다.
한 번 넘어져서 주인도 살리고 부인도 살렸지만, 매를 맞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충의와 신의를 다한다고 해서 죄를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불행히도 저의 경우가 그와 같습니다.”

연나라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소. 다시 한번 나를 위해 일해주오.”

그는 소진을 전보다도 더욱 극진히 대접하였다.

                                                          사마천 지음 <사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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