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
한네스 슈타인이라는 독일 출신 언론인이 쓴 『정당하게 이기기 위한 대화 교본』이다.
제목으로 봐선 논쟁의 달인을 만들어 주는 가이드북 같지만 그게 아니다.
<항상 옳다(Immer Recht Haben)>라는 원제가 어쩌다 그런 싸구려 실용서 제목으로 탈바꿈했는지 몰라도, 저자는 상반된 두 개의 주장이 동시에 옳을 수 있음을 논증한다. 자신은 바그너 음악이 싫고 비틀스에 열광하며 숀 코널리가 아니면 007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바그너 음악이 훌륭하고 롤링스톤스가 더 좋으며 로저 무어만이 제임스 본드 역을 소화할 수 있다고 증명해내는 것이다.
그의 모순율 파괴는 개인적 기호에서 그치지 않는다.
낙태와 존엄사에 대한 찬반과 신의 유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구온난화의 책임 소재처럼 논쟁적 주제의 양극단에 서서 정반대의 주장을 각각의 명쾌한 논리로 풀어낸다.
얼마나 통렬한 조롱인가.
작은 사건 하나에도 주장과 반박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인터넷 세상에서,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성향에 따라 극과 극의 논조가 펄럭이는 신문 사설이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포스트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다른 이의 주장만큼이나 내 주장도 온갖 레디메이드된 근거들로 조립·포장된 것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지 않느냔 말이다.
저자는 “논쟁을 좋아하며 설전을 벌이다 종종 주먹다짐으로 비화하기도 하는 독일인”들을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나는 독일인보다 다혈질이 덜하지 않고 설득력 있는 반론을 들어도 결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우리 정치인(유사 정치인 포함)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여야(與野) 갈등을 넘어 여여(與與) 갈등으로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는 세종시 문제에서부터, 야당이 헌재 판결로 꺼진 불씨를 되살리려 애쓰는 미디어법 문제, 문자 그대로 백 년을 내다보며 풀어야 할 사교육 해법, 그보단 가까운 미래지만 그래서 더 불안한 북핵과 전작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토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없다.
눈이 짓무르도록 봐왔지 않은가 말이다.
토론장에 들어서봐야 서로 목만 쉬고 감정만 상해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은 얼굴로 문을 박차고 나올 뿐인 걸.
뻔한 사안에도 나름의 근거와 논리로 무장한 반대 주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국민들을 소모적 논쟁 속으로 물귀신처럼 끌어들이고 마는 걸 말이다.
이 책은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게 할 뿐이다.
그렇지 못하고 해법도 없는 책에 돈 썼다고 욕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을 위한 요약이 『채근담(菜根譚)』에 있다.
진리엔 동서양의 구분이 없는 법이다.
“많은 사람이 의심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버려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남의 말을 물리쳐서도 안 되며, 작은 은혜를 사사로이 베풀어 대의를 상해서는 안 되고 공론을 빌려 사사로운 감정을 해결해서는 안 된다(毋因群疑而阻獨見 毋任己意而廢人言 毋私小惠而傷大體 毋借公論以快私情).”
어떤 주장도 할 수 있고 어떤 논리도 펼 수 있지만 당리당략이나 계파 이익 같은 사감을 버리고 국가를 위하는 대의를 세웠느냐가 그 주장과 논리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준거가 된다는 말이다.
내가 옳은 주장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데 쉽지만 중요한 기준이 하나 있다.
내 아들, 내 딸, 내 조카에게 보다 나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는 주장을 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된다.
그들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될 때 아버지·어머니·삼촌·숙모를 원망하지 않을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주장인지 따져보면 된다.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명품 자족도시와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글로벌 미디어, 사교육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개천의 용, 핵구름의 공포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통일된 조국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그런 주장인지 판단하면 된다.
내 앞에서 거품 무는 재수없는 반대자의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내 아들·딸·조카들을 위한 나라 말이다.
이훈범 /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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