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 마르코 10,1-12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즘 아이들, 정말 버릇도 없고 문제가 심각하다.”
참 재미있습니다. ‘청소년 문제’, 오늘 우리 시대만 심각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미 수천 년 전 어른들도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가 청소년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혼 문제도 마찬가지임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씌어 진 후 벌써 2천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만 이혼문제가 심각한 줄 알았는데, 예수님 시대 당시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서 모세 시대 역시 이혼문제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완화시키고, 이혼을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모세 시대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지금 이 사회는 어때요? 점점 늘어나는 이혼율을 보면서, 왜 이럴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 왜 그럴까요?
바로 상대방에 대한 섣부른 판단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는 행동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서 섣부르게 판단하고 부정적인 모습만 보려고 하니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이지요.
어제 읽은 책에서 30초 규칙이란 것이 나옵니다. 이 30초 규칙이란,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섰을 때 딱 30초만 더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라는 뜻은 아니지요. 대신 어떤 결단의 기로에 섰을 때 30초만 더 자신에게 겸허하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짧은 30초의 순간이 인생을 결정적으로 뒤바꿀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아주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으로 얻게 된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30초만 더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모든 만남에서 이런 30초 규칙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섣부른 판단에서 분명히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