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 윤임수
앞뒤 재지 않고 욱하던 시절이 있었네
함부로 뱉은 말들이 사정없이 벽을 때렸고
날아간 소주잔이 서로를 아프게 치기도 했네
그러나 이제는
생의 뜨내기들 허름하게 모여드는
역전시장 막걸리집 막된 고성에도
눈살 쉽게 찌푸리고 싶지 않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해도
더 이상 서운한 내색 보이고 싶지 않네
그저 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신산한 삶의 언어들이나 술잔에 풀어
홀짝홀짝 마시고 싶네
그렇게 몇 잔 술에 취해
욱하고 속엣것들 쏟아지더라도
까짓것 쓰윽 닦아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오고 싶네
그것이 마치 오랜 습관인 것처럼
조용히 하루를 여미고 싶네
- 윤임수,『절반의 길』(천년의시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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