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고려장 이야기 옛날 고려 때에는 남자나 여자나 일흔 살(70)에 고려장을 하였다. 어느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둔 일흔 살이 되는 할머니가 있어서 고려장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살아있는 어머니를 산에 지고 가서 묻을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고려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에 가보니 높은 곳에 넓고 편편한 좋은 반석이 있었다. 어머니를 이 반석에 고려장하기로 하였다.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를 업고 놀러 갑니다. 저 산에 좋은 반석이 있습니다. 그래... 아들은 어머니에게 거짓말로 놀러 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벌써 아들의 뜻을 알았고 아들이 할 수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 업히시오 오냐! 아들도 어머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서로 속내 말은 아니하고 업고 업혀 갔다. 길은 매우 멀었고 몇 번 씩 쉬고 쉬면서 가는데 어머니가 생각해 보니 먼 길을 업고 가느라고될 뿐 아니라 밑만 보고 걷다가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못 찾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쉴 때마다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꺾는 이유를 몰랐다. 아마 무심히 꺾으시려니 생각하였다. 그럭저럭 목적지인 반석에 도착했다. 어머니 여기요. 자리가 참 좋구나. 어머니는 슬프기만 했다. 그러나 아들의 섭섭해 하는 마음을 아는지라 말로 나타내지 않았다. "오늘 잘 잡시다" 그러자 " 너도 많이 먹어라" "예 먹습니다. 어머니" 기운이 빠졌지 업고 오느라고" 괜찮습니다. 올해는 농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잘 될 겁니다. 비가 잘 오니까요" 고려장 하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들이 잘 살기를 걱정해 주시는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겠느냐 생각하니 아들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아들은 하는 수 없어서 거짓말을 하였다. 어머니 ! 여기 계십시오. 집에 가서 저녁밥을 가져오리다. 하고 갈려고 하자 어머니는 아들이 산에 자기를 버리고 가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얘야 길을 찾겠느냐? 길을 모르겠거든 나뭇가지 꺾인 것을 보고 따라 가거라 내가 올 때 가끔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 이 말을 들으니 아들의 가슴은 더욱 더 찢어질 것 같았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은 허둥지둥 갈피를 못 잡았다. 왜 일흔 살이 되면 고려장을 해야 하나 원수 같은 일이로다. 하고 한탄을 하면서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살림 걱정이며 길을 잃을까 걱정하며 나뭇가지를 꺾어 두었더라는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도 울면서 여보, 법이 다 뭐요 어서 어머니를 모셔 옵시다. 정말이오? 정말이지요. 법인데? 국법인데 국법을 어긴단 말이요? 그 법에 따라 우리가 벌을 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들은 아내 보기가 부끄러웠다. 당신은 마음이 참 착하오. 어서 가보시오 어머니가 추우실테니 밤에라도 가서 업고 옵시다. 그럽시다. 아들은 등불을 켜 들고 그 반석이 있는 곳을 찾아 갔다. 반석 가까이 가니까 무슨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는 불도 꺼지고 없었다. 이상하다. 무서운 기운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우리 아들 풍년들어 바리바리 실어다가 노적봉 쌓아 두고 두고 먹고 남고 쓰고 남고 오래오래 길이 길이 부귀영화 누리도록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아들 잘 되기를 빌고 있지 않은가. 어머니! 하고 앞에 꿇어앉으니 아들내외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온 산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일흔이 넘었는데 고려장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온 일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러자 이 이야기가 임금님께 알려져서 아들이 임금 앞에 불려가게 되었다. 너에게 일흔 노모가 있다면서 ? 예, 그렇습니다. 고려장을 했느냐 ? 못 했습니다. 국법을 어긴 까닭이 무엇이냐? 예, 황송하오나 이러이러 하옵니다. 임금 앞에 꿇어앉은 아들이 전, 후 이야기를 하자 임금님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고려장하려고 업고 가는 줄을 알면서도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었단 말이지? 예, 그러하오니 그 사랑에 감읍하여 다시 집으로 어머님을 업고 왔나이다. 알겠다. 효성이 지극하구나. 임금님은 그 아들에게 양식과 베를 한 짐씩 상으로 주어 칭찬하고 그 때부터 법을 고쳐서 나이 일흔이 되더라도 고려장하는 것을 아니하여도 좋으니라. 하고 어명을 내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