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tings(손님들에게) 5435

가을이 깊어간다

부탁 / 나태주 ​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 - 나태주,​『너도 그렇다』(종려나무, 2009) 가을이 깊어질수록 그리움도 깊어간다.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잠 못 이루는 가을밤은 길기만 하다. 시월 한 달 내내 그리움 때문에 걷고 또 걷는다. 걸을 때는 몰랐는데 걸음을 멈추면 다시 가을이 깊어간다. 2023. 10. 26

철새

다시 찾아온 두루미 가족이 동검도 갯벌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게 구멍을 들락거리는 칠게와 꿈틀거리는 갯지렁이와 함께 한 번씩 빨간댕기머리로 지는 해를 휘감으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바다의 감각을 온몸으로 저장하며 언 발자국마다 노을빛을 찍고 간다 - 한연순, 시 '철새' 살기 위해 찾아오거나 찾아가는 철새들. 그들의 생존전략을 보면 눈물겹기도 합니다. 순리에 따르면서, 질서를 따르면서 옮겨가거나 옮겨오는 방식. 이해타산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는 사람들의 행동과는 다릅니다. 자연에 맞춰 살아가는 동식물의 섭리에 사람을 함부로 비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향기의 전파

사색의향기는 삶의 향기를 만들고 이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가 가치 기준이다. 따라서 삶의 향기를 만들고 전파하는 분들이 가장 대접받는 단체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타인의 인생에서 풍겨오는 향기는 우리에게 힐링의 기회를 준다. 이것이 회원 서로 간의 존중과 배려를 통해 이타심을 키우게 하고 나아가서 사색의향기가 추구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중에서 어제 전철 안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경로석 마즌편에 앉은 노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옮겨 봅니다. 아들 가족과 함께 살던 할머니가 아들 내외의 권유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5박 6일의 여행을 아들 내외가 정성껏 준비해서 편안하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니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을비 내리는 아침

가을비의 눈물 /未松 오보영 무엇이 그리도 슬퍼서 줄줄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무엇이 그리도 답답해서 세차게 땅바닥을 두드리고 있는가 머지않아 단풍 들어 붉어질 푸른 숲이 안타까워선지 곧 불어 닥칠 찬바람을 염려해선지 무언지는 모르지만 무심결에 덩달아 나도 눈시울을 적신다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린다 올해는 가을비가 자주 내립니다. 아침을 먹고 상가(喪家) 조문(弔問) 갈 준비 중인데 마음이 스산합니다. 어제 오전까지는 환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는데 부고를 받고 나서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회색빛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 믿습니다. 그 여행자는 자신을 위해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전에 자신이 쌓은 공덕이 유일한 희망이겠지요. 그리고 여행자를 위해 바치는 기도가 ..

부고(訃告)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이 몇 개 저 안에 천둥이 몇 개 저 안에 벼락이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부고(訃告)가 왔습니다. 종인(宗人)인 재연(在衍) 씨가 별세하셨답니다. 예순넷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재연 씨와 저는 한산군파종중에서 재연 씨는 총무이사로 저는 재무이사로 근무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 병으로 고생하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했네요. 재연 씨의 영혼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길 빕니다. 2023. 10. 18

스밈에 대하여

자주 걷는 길 한쪽의 갈대숲. 그 자그마한 숲으로 작은 새들이 거리낌 없이 들락거린다. 갈대와 새가 서로를 내어주고 있다. 통통 살이 오른 그 새를 ‘갈대새’라 부르기로 했다. 새들이 갈댓잎에 앉아 바람과 시소를 즐기면 갈대는 좋다고 몸을 떤다. 그런 갈대를 보면서 새들은 더욱 힘차게 발을 구른다. 갈대새의 디딤에 있는 대로 몸을 휘는 갈대, 새들이 자리를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매무새를 고친다. 갈대숲에 새가 든 것이라기보다는 심심한 갈대가 새들을 불러들여 무료함을 달래는 것 같다. - 최연수, 짧은 산문 ‘스밈에 대하여’ 중에서 마음 한자리 내어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새처럼 날아왔다가 어느덧 날아간 자리가 빈 둥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영원하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관계. 그렇다고 허무하거나 슬프기..

풍옥헌(風玉軒) 선생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그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사랑은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냥 좋아서, 그냥 사랑하니까 무조건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도가 있어 상대가 할 수 있는 것까지, 해야만 하는 것까지 모두 해줄 수는 없습니다. 특히 자식에 대한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독립적인 사람으로 기르기 위한 부모의 마음가짐과 기준, 그리고 일관된 계획이 필요합니다. 지난 14일엔 시중공 세일제를 지냈죠. 어제, 15일에는 저의 18대부터 13대 할아버지까지 여섯 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일제(歲一祭)를 모셨습니다. 저의 18대 조부 한산군(漢山君, 諱 溫之)의 후손이 풍양조씨(豊壤趙氏) 12만 명 중 약 30%를 차지합니다. 윗대부터 ..

시조 조맹(趙孟) 할아버지의 세일제(歲一祭)

가을비 내리는 토요일, 오늘은 풍양조씨 시조 조맹(趙孟) 할아버지의 세일제(歲一祭)를 지내는 날입니다. 천 년의 풍상을 겪었지만 후손이 12만 명이 이르는 명당 앞에서 경건하게 재배를 올렸습니다. 조맹은 풍양현(豐壤縣, 지금의 남양주시 진건읍 일대)에서 태어나 70세에 고려 왕건의 참모가 되어 삼한개국공신 3등에 오르고 조맹이란 성명(姓名)을 하사 받으셨다고 합니다. 모진 풍상을 견디며 1천 년을 견딘 묘(墓) 뒤쪽 가까이에 광해군의 모친 공빈 김 씨를 모신 성묘(成墓)가 있습니다. 광해군이 왕이 되자 왕명으로 조맹 할아버지 묘를 파묘하라 했지만 신하들의 간언(諫言)으로 봉분을 깎아 평장(平葬)으로 파묘를 모면했답니다. 비 때문에 제사는 재실(齋室)에서 올렸습니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못난 후손이 인..

해미순교성지 순례

가을 냄새는 풍요다 시월은 상강 절기이다 보니 어디를 가나 구절초 꽃내음이 지천이다 자연의 질서는 실패가 없는 것 하늬바람이 꽃을 다그친다 해도 기어이 오고야 마는 가을 냄새는 풍요다 서늘한 기운이 쓰적쓰적 겨드랑이 속살 간질이면 마음도 덩달아 노란 황금의 들녘에 서 있다 허름한 빈집 뒤편에도 쑥부쟁이 향기가 머물고 나그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으스스한 건들바람에 나직이 귓전을 찰랑이는 앞 강물 소리 그 강물 소리 집 떠난 이들의 서러운 울음이라던 할머니의 말씀이 그리워지는 음산한 가을 오후 혼자 지키는 외로운 시간은 아직도 빛나는 햇살 속에 있다 - 박종영 님 10월 12일, 하늘이 맑고 고운 가을날 주임신부님 모시고 요셉회 회원 스무 분 사목회 위원 아홉 분이 해미순교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출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