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tings(손님들에게) 5435

송편

​ ​손금 - 유현숙 ​ ​ 자재암 들어 백팔 배를 드리는 어머니 백여덟 번째 이마를 바닥에 대고 머리 위로 내던졌다가 뒤집은 손바닥에는 희고 검은 잔금들이 패였다 한 생 내내 얻었던 것 다 잃고 수심 깊은 주름살만 거머쥐고 상경한 노모다 삐걱거리는 무릎관절과 휜 팔꿈치와 바람에 닳은 이마까지 먼지 나는 일대기를 온몸으로 받들어 올린 다음에도 꿇고 엎드린 어머니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저러다가, 저렇게, 깊은 잠드는가 싶다 어머니 손바닥 깊게 파인 도랑 사이로 고요한 것이 흐른다 흥건하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저 무진한 물길 주악비천도의 젖은 치맛자락이 문지방을 넘는다 풍경을 치고 온 바람이 연등 아래를 맴돌고 어머니,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 추석. 어릴 적 기억 속에 추석은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다는 ..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추석 /김귀녀 알토란 같은 손자가 오면 그 옛날 할머니를 생각한다 추석 전 날 손주들을 기다리고 가는 날 사랑한다고 꼭 안아주던 일 이슬이 채 가시지도 않은 플라타너스 거리에서 먼 데서 오는 나를 기다리던 외할머니 먹먹한 빈자리에 덩그마니 보름달이 밝다 보름달 속에 인자하게 웃으시던 할머니 얼굴을 보며 나도 손자를 안는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추석에 고향을 찾거나 명절을 쇠려고 떠난 적이 없습니다. 12대 종손(宗孫)인 탓에 친척들이 오셔서 차례를 지냈지요. 차례(茶禮)와 제사(祭祀)로 고생하던 엄마와 아내가 그립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를 깨닫고 천주교 신앙의 믿음으로 제삿날에 미사를 통해서 예(禮)를 대신했습니다. 그래도 섭섭해서 설날과 추석의 차례만큼은 제수(祭需)를 마련해서..

박신언 라파엘 몬시뇰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 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부모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내가 보았거나 기억하는 아버지 어머니보다 남들이 기억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두 분의 모습들. 부모라는 이름으로만, 부모여야만 한다는 선입관으로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거나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색의 향기 가을비가 내리는 고즈넉함에 행동과 생각을 느릿느릿하게 하고 있는 아침입니다. 어제 명동 패밀리아채플에서 열린 9월 옹기장학회 월례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옹기장학회를 세우는데 공로가 많은 박신언 몬시뇰께서 건강..

결혼기념일

계절의 기억 /이원문 잊혀진 여름날에 빨간 봉숭아 손톱의 그날을 어찌 잊을까 하얀 찔레꽃의 그날은 봄의 것이었고 뒷산 단풍에 낙엽은 가을의 것이었다 찾아간 억새꽃 언덕 눕는 억새꽃은 누구의 것이었나 바람의 억새꽃 그 언덕 찾아 다시 오른다 어제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긴 추석 휴일이 오기 전에 모여 흑석동성당에서 미사도 참례하고 아들과 딸의 엄마, 손녀, 손자의 할머니와 외할머니이며 영면 중인 내 아내에게 인사하러 모였습니다. 9월 24일은 저와 아내의 결혼기념일입니다. 뜻깊은 날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여 뜻깊은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2023. 9. 25

저의 소망

꽃무릇 /이재환 살아 계실 때 자식 잘되길 기도하고 걱정하신 울 엄마 하늘나라 가셨어도 변함없는 자식 사랑 내려놓지 못하시고 참사랑 꽃 꽃무릇이 붉게 핀 걸 보니 울 엄마를 닮았네 어제 토요일에 성묘를 갔습니다. 송추 운경공원 묘원에 계신 부모님 묘에 과일과 송편을 올리고 청주 한 잔 올렸습니다. 용미리에 계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화장해서 이곳으로 옮겨 모신 지도 어언 3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큰어머니, 어머니 세 분이 양지바른 곳,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는 곳에서 저와 동생, 아들과 장조카가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의 소망은 제가 소천하기 전에 저의 9대조부터 할아버지까지 여덟 분의 묘를 한 곳에 모아 모시는 것입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2023..

해미순교성지 사전답사

본디 하나인 내가 가끔은 둘이 된다 햇살 눈 부신 날엔 더욱 신명 나게 졸졸 삼백예순다섯 날 좋다 싫다 내색 없는 또 하나의 나 도무지 뗄 수 없어 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할 우린 숙명적인 관계 미우나 고우나 내가 널 사랑할 수밖에. - 류인순 님 어제 해미순교성지를 다녀왔습니다. 반포성당 요셉회 회원들이 10월 12일 순례를 위한 사전답사였습니다. 여러 차례 순례한 성지이지만 더욱 아름다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1시 성지 미사엔 멀리 포항에서 온 장애우를 돌보는 베들레헴의 집에서 장애우들과 봉사자들이 참석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산상설시장에 들러 '할머니 장터국밥' 집에서 맛있는 소머리국밥을 먹었습니다. 참 좋은 몫을 택한 하루였습니다. 2023. 9. 22

양근순교성지

두 달 전에 순례하기로 약속했던 양근순교성지에 왔습니다. 순교자현양회 옛 동료 봉사자들과 함께 순례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양근과 지평으로 나눠져 있던 고을을 합쳐서 지금의 양평군이 되었지요. 경의중앙선 오빈역에서 내려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길을 걸어서 순례를 했습니다. 11시 미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집전되었습니다. 가을비가 사근사근 속삭이는 하루였습니다. "참 좋은 몫을 차지했구나." 2023. 9. 20

가슴 설레는 아침

새 며느리 /鞍山백원기 이웃집에 새 며느리 들어왔다 실력 있는 공무원이라 온 가족이 기뻐한다 얼굴 예쁘지 마음씨 곱지 월급 받아오지 보너스 타지 정년 되면 연금 받지 넝쿨째 굴러왔다고 너무도 좋아하는 이웃집 시부모 가을이 깊어지는 걸 저는 거실에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동향(東向)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거실을 지나 주방까지 길게 드리우는 아침입니다. 어젯밤에 늦게 잤다가 아침 루틴(routine)이 깨졌습니다. 9월을 시작하던 처음에는 한가한 한 달이라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새로운 일정이 늘어났습니다. 내일은 순교자 성월에 마재 성지를 순례하게 되었고 모레는 해미순교성지 순례를 준비하기 위해 사전답사 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토요일엔 가족들이 모여 송추에 모신 부모님 묘를 성묘합니다. 가슴 설레는..

깊어가는 가을

고향의 가을 /조철형 고향은 언제나 바람의 가슴에 그리운 꿈을 꾸게 한다 향수가 어린 들녘엔 삶의 한 조각 푸른 그림들이 의미 있게 그리운 향기를 잔잔히 자아내며 바라본다 가을에 바라보는 내 고향 하늘은 꿈에서라도 불러보고 싶은 그리운 이름들을 찾아서 돌아온 자식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사랑하는 임이 머무는 곳이다. 보도에 떨어진 은행을 보며 가을을 마중합니다. 한낮의 기온이 더워 잊고 있었는데 뒹구는 은행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봅니다. 2023. 9. 18

“일십백천만” 이론

종점(終点)의 노인 /김시종 우대증 안 가져도 공차 타는 파파 노인. 종점에 닿았는데, 내리실 줄 모르시네. 인생도 하차(下車)를 않고서 새 출발(出發)을 하고 픈지...... 한동안 유행했던 말이 있지요. "구구팔팔이삼사(九九八八二三四)"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앓다 죽는다.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의 기대 수명이 120세에서 이젠 150세로 껑충 뛰었다네요. 이 모든 희망은 건강과 행복한 삶일 때 축복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통이라 생각합니다. 이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곧 “일십백천만” 이론의 실천이라고 합니다. - 일 :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고 - 십 : 하루에 열 번 이상 웃고 - 백 : 하루에 백 자 이상 글을 쓰고 - 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