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tings(손님들에게) 5435

오늘은 어디를 걸을까 궁리 중입니다

이제 가을이 오리라 /김은숙 대지에 파고든 볕의 깊이 어디까지 이른 걸까 ​ 달궈진 바람 오래 머물던 어둑하니 산그늘도 차츰 넓어지리니 ​ 먼발치 달빛은 모르는 척 고요하고 소홀한 얼굴에 드리워지는 아득 ​ ​ - '그렇게 많은 날이 갔다', 고두미, 2022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데요. 공기가 맑아 숨쉬기 편합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여인네 살갗처럼 보드랍습니다. 시월 초하루부터 하루 2만 보를 목표로 열흘 동안 걸은 걸음 숫자가 207,402 보를 달성했습니다. 자연 속을 걷는다는 것, 따스한 가을볕을 느끼며 걷기가 너무 좋습니다. 수원교구의 신부님이 저보다 2만 보 더 많이 걸으셨네요. 남한산성 주임신부님이셨는데 엄청 걷고 계십니다. 저의 종친 중에 한 분도 저보다 2만 5천 보를 더 걸었..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농촌에서 오래 살아 본 사람은 안다 강물도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려면 길게는 열흘 짧게는 일주일간 물때를 벗는다는 것을 그때는 아무리 지저분한 강물일지라도 물밑이 명경처럼 아주 맑아지고 민물고기들도 물가로 마실을 가는 예의를 보인다 그렇게 그 시간이 지나고 강물 바닥이 누렇게 변하고 나서야 내년 이맘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한 생을 살 준비를 하고 몸을 정갈하게 갖추고 난 후에야 철이 들었다 혹은 인생을 안다고 그때서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 서봉교, 시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를 알아채는 것. 그것은 철이 들었기도 하고 인생을 아는 것이기도 하는 것일 테지요. 쓸쓸하고 슬픈 단면까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자연입니다.

구절초 꽃길

풀꽃·2 /나태주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들국화. 누구에게나 정답고 아름답게 들립니다. 하지만 들국화라는 꽃은 없습니다. 가을의 꽃 국화를 닮은 꽃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들국화로 부르는 꽃은 3가지가 있습니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꽃 모양을 보고 구분하기는 쉽진 않지만 꽃대와 색을 구분해 보면 알아볼 수 있답니다. 이 셋은 모두 나물이나 약용으로 사용하는 식물입니다. 특히 구절초는 향이 좋아 술을 담가 먹는 꽃입니다. 저는 구절초를 좋아합니다. 아주 오래 전 경남 고성에 있는 문수암( 文殊庵)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휴양을 위해 세속과 잠시 인연을 끊었더랬죠.*^^* 그때 문수..

콩나물 북엇국

시월 /이시영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 넣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 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오전 10시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과일과 깐 마늘을 샀습니다. 무심코 깐 마늘 포장지를 보니 생산지가 '부석'이라 표기되었네요. 제가 서울에서 엄마 등에 업혀 피난 갔던 곳,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떠났던 낯익은 곳, 충남 서산시 부석면에서 생산된 마늘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정겹게 느껴집니다. 마늘 다져 넣고 끓인 콩나물 북엇국으로 점심..

수줍은 꽃 '메꽃'

메꽃 /유은희 버려진 지게로 메꽃이 뻗어가더니 이내 이마를 짚고 부러진 다리를 감싼다 고구마순도 볏짚도 산 그림자도 더는 져 나를 수 없는 무딘 등을 쓸어내린다 지게의 혈관이 되어 온몸을 휘돈다 한쪽 팔을 담장 높이 치켜들고는 지게의 뼛속까지 똑똑 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산비탈 마당가 메꽃과 지게는 하나의 심장으로 살아간다 반신불수의 지게에서 메꽃, 핀다 흰밥 수저 가득 떠서 아, 하고 먹여주는 늙은 입과 아, 하고 받아먹는 늙은 입이 활짝 핀 메꽃이다 가을 들풀 숲 속에서 수줍은 듯 숨어 피는 꽃, 양지바른 곳이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 메꽃입니다. 우리나라의 토종 꽃입니다. 토종이기에 여러해살이 꽃입니다. 떨어진 씨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죠. 나팔꽃과 꽃모양이 같아 모두 '나팔꽃'으로 ..

세상 이치(理致) /박동수

푸르던 공원에 찬바람이 분다 까칠한 두려움을 동반(同伴)한 아픔을 놓고 돌아서는 그날 석양의 따사로움도 싸늘한 겨울에 머문다 항상 푸르리라 생각한 공원의 풍요 하나둘씩 낙엽 되어 떨어지는 차가운 가난이 아무도 풍성한 여름날처럼 이웃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과 네가 아는 것이 다르다는 이치 내 아픔과 너의 아픔을 모르는 푸른 날 공원의 숲처럼 언제나 저만은 푸를 줄 알았다 바람이 싸늘하게 사랑을 식히고 지나가면 풍요했던 만큼 아파야하는 나목이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을 - 박동수 님

불면증

라벤더 :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꿀풀과의 허브식물로 90cm까지 자란다. 꽃은 6∼9월에 연한 보라색이나 흰색으로 피고 잎이 달리지 않은 긴 꽃대 끝에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드문드문 달린다. 꽃·잎·줄기를 덮고 있는 털들 사이에 향기가 나오는 기름샘이 있다. 꽃과 식물체에서 향유를 채취하기 위하여 재배하고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 라벤더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은 꽃이 그윽한 향기까지 풀어놓으니 라벤더 정원에 서면 나의 봄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춘몽 속이네 창문을 통해 거실로 들어온 가을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요즘 저를 괴롭히는 건 불면증입니다. 약을 안 먹고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데 잠들기도 어렵고 여러 차례 쉽게 깨고 다시 잠들기가 힘이 듭니다. 여러 정보를 알아 보고 따라 해봐도 효과가 없습니다. 불과..

수호천사 기념일

비와 그리움 - 윤보영 비를 따라 가슴에 그리움이 내립니다 우산을 준비할까요 아니면 그대 생각을 준비할까요 추석 연휴가 아직 하루가 더 남은 월요일, 둘째 아들 가족과 함께 천주교용인공원묘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운 이의 묘를 가기 전 사제 묘역에 들렀습니다. 묵주기도 중에 기억하는 두 분의 신부님, 한정관 바오로 신부님과 김대군 파트리치오 신부님의 묘 앞에 서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치고 영원한 생명을 빌었습니다. 수호천사 기념일에 그리움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2023. 10. 02

묵주기도 성월

10월의 기도 /은파 오애숙 깊고 심오한 그 약속 이루어 지기까지 일렁이며 춤추는 단 한해 눈앞에 보이듯 풍성한 결실 속에서 오곡백화 날개 쳐도 만물의 풍성함으로 생생한 현실 식탁에서 눈웃음 짓는다 해도 보이는 게 다 아니기에 단을 부여잡고 부르짖네 감사로 춤추기 위해 마지막 완주 위하여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마지막 3개월 옹골차게 돌진 하도록 손 모아 기도의 단 올리옵나니 간구에 응답하여 주소서 시월. 가장 화려(華麗)하면서도 가장 우수(憂愁)에 잠기는 계절입니다. 시월에는 자연의 변화를 통하여 신(神)의 오묘함을 느끼며 돌아가신 조상(祖上) 님의 음덕(蔭德)에 감사하는 달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묵주기도 성월로 지냅니다. 이슬람교에 의해 유럽이 정복 될 위기에서 묵주기도를 통해 승전(勝戰)을 거둔 것을..

구월 마지막 날 단상(短想)

9월의 마지막 밤 /오광수 가자니 찬바람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자하니 해 넘기며 갈 길이 남아있네 서서본 가위 달을 찻잔에 띄우고 함께한 정든 님과 잔 잡고 마주 하니 감나무 그림자는 바람을 베고 누웠는데 억새만 달빛 품에서 가만가만 옷을 벗네 구월 마지막 날, 토요일입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네요. 가는 구월이 슬퍼서 비가 내리나 봅니다. 아니면 시월을 재촉하는 가을비이겠지요. 긴 연휴 중간, 일정이 없는 토요일에 조용히 휴식을 갖고 싶습니다. 문지방 얼룩을 지우는 페인트 칠이나 해 볼까나...? 2023.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