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물려준 유산
박준원 집안은 조부 박필리(朴弼履) 때부터
인왕산 자락 세심대(洗心臺)에 집을 정하였다.
세심대는 풍광이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고운 풀이 무성하며
여름철 해당화가 필 때면 꾀꼬리 소리가 들렸다.
가을철 벽오동 푸른 잎이 떨어지면
서릿발처럼 흰 달빛이 뜰에 가득하고
겨울이면 푸른 소나무가 꼿꼿하게 서서
바람이 불면 용이 울음우는 소리를 내었다.
봄철마다 부친 박사석(朴師錫)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꽃구경하는 모임을 만들고
집에 소국주(少麴酒)를 담아 사람들을 대접하였다.
또 여름에는 그의 집이 시원하여 사람들이 피서를 왔다.
박윤원(朴胤源)과 박준원 형제에게는
세심대 집이 이러한 추억이 어린 곳이었다.
박윤원은〈세심대유거기(洗心臺幽居記)〉를 지어
이런 사실을 자랑한 바 있다
이 집에는 오래된 질화로가 있었다.
그다지 값나가는 것이 아님에도 애지중지하였으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 모양이다.
이에 대해 박준원은 잔잔한 어투로 조부와 부친과의 추억을 말하면서
어버이의 정이 깃든 물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다.
부친이 손수 화로에 밤을 구워 조부께 바치거나,
조부가 병환이 났을 때 부친이 하인을 데리고 밤새 약을 달인 일화를 말하여,
질화로가 효의 상징임을 증명하였다.
조선시대 선비는 이처럼 부모가
물려준 기물을 효의 상징으로 받들었다.
이 집에는 창강경(滄江鏡)이라는 거울도 하나 있었다.
창강(滄江) 조속(趙涑)이 사용하던 거울인데,
창강은 이를 대대로 딸에게 전하게 하였다.
박윤원의 조모가 그 집안의 딸이었기에 이 거울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를 아들 박사석에서 주었다.
박사석은 어머니가 물려받은 이 거울을 애지중지하였다.
그러나 워낙 오래된 것이라 자루가 부러졌기에
나무로 갑을 만들어 칠을 한 후 보관하였고,
나중에 이를 장남 박윤원에게 물려주었다.
박윤원은 이를 역시 애지중지하고는
그 사연은 명(銘)으로 지은 바 있다.
어버이가 물려준 것은 물질적인 재산이 아니라 효였던 것이다.
** 부모가 물려준 화로 에서 ***
어른들이 쓰시던 손때묻은 물건을
중히 여기는 그 마음이
아쉬운 세상입니다
감사하며 진성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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