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tings(손님들에게) 5437

나이가 들어 배운 것

사랑이 많은 아이 /박희진 그 아이 모르세요? 왜 그 사랑이 많은 아이. 아, 그래그래 눈이 샛별처럼 빛나던 아이, 늘 미소가 떠나지 않던 아이.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4ㄴ∽15)” 나이가 들어 변한 것 중에 하나가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는 것입니다. 내 손자, 손녀들을 보아도 그렇고 생면부지의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을 보아도 가슴이 평화로워지며 웃음이 배어납니다. 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서 "그래. 참 예..

아우라지성당

독한 놈 / 송찬호 ​ 쥐구멍으로 쥐가 쏙 들어가는 걸 보고 막대기로 구멍을 쑤시고 야옹야옹 고양이 흉내를 내다가 또 거기다 대고 오줌을 누었다 다른 때보다 한참 더 오줌을 누었다 ​ 쥐구멍 속에서 쥐가 나를 보고 독한 놈, 이러겠다 ​ - 송찬호,『초록 토끼를 만났다』(문학동네, 2017) 오래전에 성령기도회 봉사를 하던 때 강사로 모셨던 신부님에 관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11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셨는데 집이 너무나 가난했답니다. 한 방에 11남매가 뒤섞여 잠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막내의 머리를 쥐가 갉아 먹었더랍니다. 어느 해 2월, 폭설이 내리는 날 그 신부님이 계신 강원도 아우라지성당 철야기도회에 찬미 봉사하러 떠나는 찬미 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에서 정선을 지나 아우라지까지 갔었습니다. 저와 형..

베니스의 상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오늘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미사 복음 말씀입니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의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를 인용한 젊은 신부님의 강론이 인상 깊어 옮겨 봅니다.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자기 가슴살 1파운드를 담보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립니다. 안토니오의 배가 들어오지 않아 기한까지 돈을 갚지 못했습니다. 결국 재판장은 샤일록에게 증서대로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베어 가져도 좋다는 판결을 내리..

무화과나무 잎(fig leaf)

무화과(無花果) /최재환 하고픈 말 많아도 입을 다물고 속으로 속으로만 앓는 벙어리. 무화과가 제철인가 봅니다. 여름의 끝을 알리고 가을의 시작을 재촉하는 과일이 무화과(無花果)입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ㄴ)” 오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에 나오는 복음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무화과가 자주 묘사됩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말려 죽이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수치심을 느꼈을 때 치부(恥部)를 가린 나뭇잎이 무화과나무 잎(fig leaf)이라네요. 그래서 선악과가 무화과라는 추정도 한답니다. 그런 연유로 나체화나 조각 작품의 드러내기 곤란한 부분을 무화과나무 잎으로 덮는 답..

아침 식사

처서 /허형만 ​ 날벌레 낮게 낮게 난다 순식간에 날이 흐리고 앞산 중턱 소나무 검은 구름에 갇혔다 푸드덕, 지상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소리가 세찬 바람을 동반하기 시작했다 ​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짧아졌구나 천상의 모든 생명들이 서둘러 흙으로 돌아오고 있구나 견우와 직녀가 이별하기 싫은가 봅니다. 처서(處暑)인데 비가 계속 내린다 합니다. 제 아침 식사가 뭘까 궁금하시나요? 미지근한 물 한 잔으로 시작합니다. 과일을 먹는데 바나나, 키위, 아보카도, 사과를 반쪽씩 먹습니다. 나머지 반쪽은 냉장고에 넣었다가 오후에 먹습니다. 우유 한 잔에 식물성 단백질을 넣어 마시고 삶은 계란 한 개와 오트밀 30g에 들기름 한 스푼을 넣어 먹습니다. 방금 마친 아침 식사로 활기 찬 하루를 시작합니다. ..

뒤로 물러 서세요!

호갱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 호갱이란 뭔가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딱 좋은 그런 손님을 뜻하는 신조어다. - 다음 백과에서 어제 서울성모병원 안과 진료가 있었습니다. 황반변성 증세가 있어 매년 검진을 받고 있습니다. 시력 검사, 시야 검사, 안압 검사를 받았는데 지난번 검사 결과에서 나빠진 부분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1년 후에 받을 시야(視野) 검사 예약을 하러 갔습니다. 직원 두 명이 앉아서 예약을 받는데 대기자가 서로 섞여 있기에 상담하고 있는 여성 환자 옆에 섰더니 "지금 상담 중이니 뒤로 물러 서세요."라고 해서 물러 섰습니다. 그분 예약이 끝나서 창구에 다가가서 예약을 시작했습니다. 그 여직원이 손에 내년 달력을 들고 대뜸 하는 말, "뒤로 물러서서 이걸 보세요."라고 한다. 상당히 강한 어..

여린 아이 같은 마음씨

봉선화 /이미화 시골집 싸리문 열고 살포시 들어온 봉선화 제 아무리 예쁘다 한들 여인의 손끝에서 놀아 나노라 봉선화, 봉숭아로 불리는 여름꽃. 고려시대에는 꽃 모양이 봉황을 닮았다 해서 봉상화(鳳翔花)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네요. 국민학생 때 원예부에서 활동해서 그때 키우던 꽃들에 대한 향수(鄕愁)가 많습니다. 채송화, 봉선화, 칸나, 맨드라미, 베고니아, 백일홍... 봉선화의 꽃말은 무엇일까? '부귀(富貴)', '여린 아이 같은 마음씨'라고 하네요. 그래서 안마당 한켠에 봉선화를 심었나 봅니다. 집안 가득한 부귀와 마당에 뛰노는 아이들처럼 줄기마다 다닥다닥 피어나는 꽃 봉선화. 2023. 8. 21

당신의 뜨락

여름 /오규원 ​ 강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집배원이 소변을 보고 있다 물줄기가 들찔레를 흔들면서 떨어진다 근처에 있던 뱀이 슬그머니 몸을 감춘다 강은 물이 많이 불었다 구름이 많은 탓인지 햇살이 보이지 않네요. 처서(處暑)가 언젠인가 보았더니 아직 사흘이 남았습니다. 화요일부터 3일 동안 비가 예보된 것으로 보아 가을을 부르는 비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지난여름은 참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더위, 폭우, 태풍이 우리를 괴롭혔지요. 피해를 본 분들이 하루빨리 일어서기를 빌어 봅니다. 저에게 지난여름은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더위를 친구로 삼아 열심히 운동을 했고 슬기로운 생활 습관을 만들고 끊임없이 기도를 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

꽐라 꽐라 인생

꽐라 국어사전에서 보면 '술에 잔뜩 취한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또 다른 말로 '고주망태', '술고래'라는 말이 있고 영어로는 'dead drunkenness', 한자어로는 '명정(酩酊)'이라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참조 고주망태, 주태배기란 말이 더 익숙합니다. 호주의 코알라가 알콜 성분이 강한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 하루 종일 취한 상태로 사는데 이를 보고 코알라를 빠르게 발음해서 '꽐라'로 변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제 지인 중에 사업을 하던 분인데 대단한 애주가였습니다. 20도 소주 11병을 마시던 호기로운 친구였는데 일찍 소천(召天)하셨습니다. 저도 자칭 애주가였는데 꽐라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직장이 명동 YWCA 건물에 있었습니다. 그날 데모대에게..

상가승무노인곡(喪歌僧舞老人哭)

몇 번이나 반복하지만 혼자 사는 것과 고립은 다르다. 동거 가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안심할 수도 없다. 만약 함께 사는 가족이 학대나 방치를 한다면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다. 1인 가구면 돌봄을 위해 개입하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세대를 분리할 때는 노인을 집에서 빼내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이 나오는 게 도리다. 젊은 사람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쉽고 애초에 집도 부모 집일 테니 말이다. - 우에노 지즈코 著 중에서 어제 유튜브에서 본 내용입니다. 숙종 임금님이 밤에 민정을 살피러 나왔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 안에서 노랫소리가 나오고 흐느끼며 곡을 하는 소리가 나 문틈으로 살펴보니 두건을 쓴 상주(喪主)는 노래하고 머리 깎은 여승은 춤을 추고 노인은 슬프게 곡(哭)을 하더..